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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Sep 03. 2021

개 같은 개 - 마당을 나온 개, 지켜보는 고양이

EP04_공간의 중요성

집을 선택하기 , 개가 흙을 밟고 뛰어다닐 마당이 있었으면 했다. 고심 끝에 우연찮게 조건에 맞는 좋은 집을 발견하였고 이사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푸코는 실외배변을 하는 강아지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데리고 산책을 나가야 했다. (예전에 반려동물행동교정사 분께서 시바를 키우는데 태풍이 와도 나가야 한다고 하셨었다.)

그리고 다른 강아지들처럼 풀어놓고 뛰어다니게 하고 싶은데, 푸코는 목줄을 풀어주는 순간 저 멀리 달아나 버릴 게 분명했다. 그래서 약간 독립된 '흙'이 있는 공간을 찾았고, 그렇게 우리는 마당을 얻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똥누러 나간다!


마당을 나온 개는 여기저기 신나게 영역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한가지 문제는 열심히 흙을 구른 발로 실내에 들어가 휘젓고 다닌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상한  찾아먹는 녀석을 발견하곤 한다. (잡초라든가, 닭뼈라든가... ) 가끔 지렁이가 튀어나오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지렁이를 슬쩍 주워 흙더미로 던져준다. 그럼에도 강아지가 작은 흙바닥을 뛰놀다 헐떡이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마당을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푸코와 마당을 탐색하는 푸코

철저한 영역동물인 고양이.

창문을 열기 애매한 곳에 캣타워가 놓여있었던 고양이는 이제 집 곳곳을 탐색하며 돌아다닌다. 이전에 살던 집은 고층이라 두부는 창문 밖 도로의 차들과 날아다니는 새를 구경했었다고 한다.

고양이는 야행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햇빛이 내리쬐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내고, 가늘어진 동공과 함께 눕곤 한다.

그러다 용기를 좀 더 냈는지 방에 있는 모든 창가에 자기 흔적을 묻히고 있다.

마당의 나무들에 매미와 새가 가끔 앉았다 가는데, 두부는 아주 작은 동적요소에도 반응한다. 얼굴에 반이나 차지하는 두 눈을 사방으로 굴리며 세상을 관찰하곤 한다.

두부는 그 커다란 눈에 무엇을 담는 걸까. 두부의 가득찬 동공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지 가끔 그 눈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면 아득하니 빨려들어갈 것 같다.


마당을 지켜보는 고양이. 하루 일과는 창밖을 내다보는 일이다.


한적한 아침 혹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에 온가족이 마당에 모인다. 커피 한 잔에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낼 지, 어떻게 하루가 넘어가고 있는 지 가벼운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다.

푸코는 오가는 단어들을 비집고 우다다다다 마당을 누리고, 두부는 마당이 보이는 베란다에 지긋이 앉아 오가는 단어를 가끔가끔 낚아챈다.

 

DIGGING LIKE A DOG

어느날인가

푸코는 흙을 강아지처럼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마룻바닥에서 미끄러질 까봐 주저했던 우다다를 신나게 하고 있다. 낯선 모습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흙을 파고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모습이 강아지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한다. 동영상으로만 보던 행동들을 하는 녀석을 보니 여러 마음이 교차한다. 푸코가 그렇게 해맑게 웃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다. (물론 목욕한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왜 눈치 보능겨ㅋㅋㅋㅋㅋ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주택에서의 생활은 낯설고 신선하고 사랑스럽다. 언제부터인가 공간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다. (코로나 이후 집에 체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전에 유현준 교수의 강연에서 사람은 사는 구조에 따라 머릿속 구조가 달라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푸코와 두부에게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생활양식들이 하나둘 나타나는 걸 보며, 나도 그들처럼 나도 모르는 새 생활양식이 생겨나고 사라졌으리라 추측된다. 실내보다 마당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고, 사람으로 붐비는 공간보다 한적하게 체류할 수 있는 공간을 더 찾게 된다. 구성원들 모두 새로운 공간에 각자의 방식대로 적응하는 걸 보며, 갑작스런 이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올해 이사를 두번했다. 껄껄)



여담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울었었다. 암탉에게 '마당' 삶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표식 같은 거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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