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라며..
무더운 여름이 왔다. 털복숭이들에게 여름은 꽤나 치명적이다. 8월에 태어난 나도 여름이 역시나 쉽지 않다. 여름엔 산책을 하는 것도, 그저 누워있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푸코는 털이 이중 삼중으로 겹털으로 빽빽이 난 녀석이라 더욱 힘들어 한다. 얇은 털을 맞이하기 때문인지 푸코는 겨울에 비해 여름엔 외모가 한껏 못나진다. 외모와 등가교환한 시원함은 사실 형편없다. 아무리 털갈이를 한다해도 푸코의 털은 여전히 빽빽하고 따뜻해보인다.
한 때 다이소에서 파는 쿨스카프를 둘러주긴 했었지만 얼음 냉기는 푸코의 털을 뚫고 그의 살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덕분에 예쁜 스카프만 하나 얻은 채 끝이 났다. 내구성이 좋지 않아 안에 들어있던 특수물질이 터져 버리는 바람에 결국 버렸다.
처음엔 바닥을 굴러다니던 녀석은 어느새 열기를 피해 신발장에 누워있다. 집에서 유일하게 차가운 돌로 되어있기 때문인지, 현관문과 가깝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온 몸을 꼬랑내 나는 현관 바닥에 늘어뜨리고 있다. 푸코 나름대로 터득한 여름 생존 방식일 게다.
겨울만 되면 온열매트와 볕이 드는 자리를 찾아다니는 두부는 어떨까. 두부와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내는 건 처음이다. 왠지 따뜻한 걸 좋아하고 사랑할 것 같은 녀석인데, 가뜩이나 늘어지는 걸 좋아하는 두부는 여름이 되니 더욱 더 몸을 늘어뜨리고 있다. 여름은 두부의 게으름에서 발산되는 매력을 한껏 고조시켜주었다. 그리고 푸코보다 훨씬 예민하고 영민하다는 걸 여름을 통해 재차 확인한다.
우선 두부는 여기 저기 바닥을 굴러다닌다. 에어컨으로 시원해진 거실바닥을 온 몸으로 닦으며 먼지와 함께 굴러다니고 있다. 에어컨이 켜지지 않은 날이면 지면에서 한참 떨어진 캣타워 맨 윗칸을 차지하고 누워있다.
두부의 조건부 사랑을 알 수 있었던 건, 여름내내 두부는 매일 밤과 아침 함께 침대에서 뒹굴거리지 않는 것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두부는 인간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가 싫었고, 뜨끈한 침대 위 이불이 덥다고 느꼈는지 생전 쳐다보지도 않던 캣타워 위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다. (반대로 겨울엔 인간난로가 따뜻하다고 생각하는지 꼭 달라 붙어있다.)
두 녀석 모두 털옷을 두르고 있어서인지 여름을 힘들어한다. 나도 녀석들 옆에 늘어져 누워있다. 더위가 많은 셋은 에어컨을 틀고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잠시나마 행복을 만끽한다. 아 더워!
지구가 나날이 뜨거워져서 사람만큼 축사의 동물들도, 바닷 속 동물들도 이례적인 여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얼른 이 무더위가 한풀 꺾이기 바라며.
덧.
해가 뉘엇뉘엇 지고 지글지글 끓던 아스팔트 바닥이 식으면 동네엔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온 이들을 마주칠 수 있다. 다들 작렬하는 여름 볕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