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우리가 산책하는 법
비가 오는 날은 눈을 뜨면 여러 생각이 찰나에 오간다.
'출근하기 싫다.' '빗소리 좋다.' 그리고
'푸코 산책 어떡하지.'
실외배변을 하는 푸코는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 산책을 해야한다. 자기 공간에서 볼일을 보지 않기에 녀석은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하루종일 용변을 참는다. 그래서 추우나더우나 비가오나 눈이오나 녀석의 리드줄을 챙긴다. 비가 잠시 잦아든 틈을 타 후다닥 산책을 나서면 어김없이 우산을 뒤집어쓰고 나온 개와 주인들을 만날 수 있다. (개와 사람 모두 거의 반 쯤 젖어 있거나 우비를 입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푸코는 물에 젖는 것을 싫어한다. 깔끔한 성격 때문에 물로 발을 닦이면 고양이처럼 재빠르게 발을 핥는다. 물웅덩이를 첨벙첨벙 다니는 스카와 달리(심지어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까지 하는), 푸코는 보도블럭의 옆길로 살짝살짝 걸어간다. 어떻게든 물웅덩이 한방울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조심스레 걷는 모습을 보고있으면 웃음을 자아낸다.
장마가 유독 길었던 어느 해, 하도 산책을 나가자고 조르기에 현관문을 살짝 열어주고는 내보냈더니 이내 다시 집 안으로 쏙 들어왔다. '물 시러!!!' 라고 온몸을 털며. 요즘은 눈이 불편해 산책 길에 물웅덩이를 잘 피하지 못해 당황하는 녀석의 표정을 보면 안쓰럽다. 물웅덩이는 냄새로 분간도 안 되어 녀석에게는 산책길의 '변수'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수의사 선생님께서 산책 루틴을 만들어라고 조언해주셨는데, 비오는 날은 후각에 한계가 있어 그 루틴을 지키는 것조차 힘들다.)
반려인 입장에서도 물에 젖은 녀석이 온 집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반갑지 않다. 집 안 여기저기 깔려있는 러그들을 빨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침대와 소파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녀석을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매번 목욕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11kg의 삼중모를 자랑하는 녀석을 목욕시키려면 밀린 이불빨래를 하는 심정으로 멍멍이용 샤워기를 바꿔낀다. 비오는 날은 습해서 털도 잘 마르지 않는다.
여느 가을답지 않게 일주일 내내 비가 왔다. 늦은 퇴근에 녀석과 고작 집에서 5분 거리 정도 산책 아닌 산책을 즐겼다. 비도 오고, 녀석과 어딘가 나가고 싶기도 한 주말. 부모님의 드라이브 길에 동행했다. 리드줄과 어부바가방 사이에서 고민하다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녀석을 등에 업었다. 어부바 가방을 처음 본 엄마는 별게 다 있다고 애를 업을 나이에 개를 업었다며, 등 뒤에 업힌 푸코가 귀여운 지 한참을 웃었다. 등에 업힌 푸코는 우중산책을 즐겼다.
기분이 묘하다. 보통 비오는 날 산책할 때면 한 손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리드줄을 잡고 새끼 손가락에 배변봉투를 겨우 끼워놓고 걷느라 정신이 혼미하다. 그래서 이런 날 녀석과의 산책은 허겁지겁 비를 최대한 적게 맞고, 짧은 동선으로 최대 산책효과를 내기 위한 효율좋은 산책 경로를 머릿속에 그리며 출발한다. 그런데 오늘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녀석을 등에 메고 빗속을 걸으니 왠지 모를 행복감에 젖는다. 나는 비가 오기 전 살짝 젖은 공기 냄새를 좋아하는데, 등 뒤에서 녀석도 빗속 공기를 킁킁거리며 산책을 즐기는 듯 싶었다.
내일은 또 빗속을 뚫고 흙탕물을 첨벙거리며 짧고 숨가뿐 산책을 나서겠지만 가끔은 이런 반려인, 반려견 모두 여유롭게 빗소리를 느끼는 낭만을 즐겨본다. 젖은 공기 냄새 속에서 커피향이 더해지면 문득 녀석과 즐긴 시간이 떠오를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몇번의 비오는 가을을 더 맞이할 수 있을까.
브런치 푸코 두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