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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Nov 26. 2022

시속 1km로 걸어다니기

우리 멍멍이는 너른 곳에서만 산책 해야한다.

 산책을 나서면 비슷한 시간대에 늘 마주치는 이들이 있다. 푸코의 선택적 사회성으로 오가며 인사하는 이도 있고, 서로가 목줄을 챙기기에 급급한 이도 있다. 한 번도 이야기 나눠본 적 없지만 혼자 쌓아온 내적 친밀감이 작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동네에서 마주치는 개들의 견적 사항들이 궁금하다. 푸코는 냄새를 맡으며 오가는 개들의 정보를 파악할 테지만 나는 특징이 두드러지는 (아주 크다든가, 혹은 비슷하고 일정한 시간에 만난다든가) 녀석들만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 동네는 작은 강아지 못지않게 중대형 크기의 믹스견들도 많아 각기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혼자 지나가며 상상해보곤 한다.

칭구들

 그러던 중 SNS에서 우연찮게 좋은 취지로 산책을 하면 유기견한테 사료도 기부되는 어플을 찾았다. 물론 이미 산책 어플이 많이 있지만 처음 몇 번 해보다가 금세 흥미를 잃고 삭제했다. 그런데 새로 발견한 어플은 산책을 하면 기부를 한다는 새로움에 끌렸다. 거기다 왠지 우리의 발자국을 웹상에 찍는 기록을 할 수 있었고, 그 루트를 지나간 다른 강아지들의 정보도 볼 수 있었다. 내 GPS 기록이 어딘가에 데이터로 쌓여 어떤 기업에게 활용되겠지만, 편의성에 따른 대가라 생각하며 회원가입을 했다.

 우리 집 주변의 지형이 지도에 표시되고 근처를 돌아다닌 강아지들의 마크가 표시됐다. 우리 동네는 아파트 밀집 지역은 아닌지라 비교적 그 빈도가 적었다. 푸코와 나의 발자국으로 동네 지도를 가득 채우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350m마다 어플은 지도에 발자국을 자동으로 남겨주었다. 보통 산책을 한 번 나가면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 정도 하기에 텅 빈 거리를 우리의 발자국으로 남기리라는 거대한 포부를 안고 어플을 켜고 첫 산책을 나섰다.

<피리부는 개> 한강공원이 역시 산책하기 좋은갑다!!

 우선 첫 산책시간은 약 1시간. 그리고 거리는 1킬로미터를 살짝 넘겼다. 시속이 1km/h 인 셈이다. 한 시간 정도의 산책이면 한강 다리 하나 정도는 너끈히 갔던 과거에 비교해보면 턱없이 느려졌다. (강아지의 평균 달리기 속도는 30km/h 정도이다.) 아마 최근 시력이 남아있는 푸코의 오른쪽 눈이 쌀쌀해진 날씨와 함께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녀석은 이제 아주 미세한 빛과 움직임에만 반응하고 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소심한 녀석은 앞이 안 보이니 더듬거리고 주저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녀석과 항상 다니던 길로 간 산책임에도, 녀석은 인도를 벗어나 차도로 떨어지는가 하면 무엇이 두려운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행인들과 부딪힐 수 있는 아찔한 상황들이 몇 번 연출되어 결국 녀석을 안고 이동하기도 했다. 공간을 스스로 인지하고 움직이게 하려고 가다 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산책시간에 비해 이동거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쉬운 성적을 약 올리듯 집에 돌아와 어플을 확인하니 발자국 두 개를 겨우 얻었다.


'지울까..?'


 다른 강아지들과 네트워킹 하고 싶은 마음에 설치한 어플인데, 왠지 우리의 처지만 복기시켜주는 기분이 들어 다음날 산책 때는 어플을 켜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어플의 목적을 '푸코의 질환으로 인한 산책 행동 패턴의 변화 기록'이라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설정하였다. 질환이 악화될수록 녀석이 어떤 산책 루트를 갈 때 가장 불편하지 않게 속도를 내며 갈 수 있을지, 또 평균 산책시간이 어느 정도 되어야 녀석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지 당분간 체크해보기로 했다.

여기선 마음 껏 걷자!!!!

 자기 전 유튜브에서 '눈이 나쁜 강아지', '눈이 안 보이는 강아지'를 검색해서 훈련사들의 조언을 주워 담았다. 복잡한 길은 가능한 안고 이동하고, 장애물이 없는 너른 잔디밭에서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해주라는 조언이 있었다. 또 갑자기 다른 개체(강아지)가 다가오면 당황해서 물거나 짖을 수 있기에 사회화 활동은 자제하는 것을 권했다. 아니나 다를까 푸코가 최근에 다른 개가 와도 인지하지 못하다 당황해서 주저앉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조만간 녀석을 등에 업고 이동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은 마음 아픈 생각이 밀려온다. 너른 공원에 가기 전까지는 업고 가서 마음껏 풀밭을 뛰어놀 수 있도록.


싸늘해진 온도만큼 속상함이 늘어나는 밤이다.


어디보구 있는거야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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