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민주주의

탈북자의 눈에 비친 '아이러니 남한'

by 이샘


2016년 촛불집회를 경험하면서 민주주의나 정치에 처음 관심을 가졌다. 그전까지 ‘정치’는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였다. 그즈음부터 ‘민주주의 교육’에 꾸준히 참가했다.

책상머리에서 배운 민주주의는 ‘나의 의견과 목소리가 중요한 만큼 상대의 의견도 존중받는 것’이라고 배웠다. 내가 살고 있는 남한의 민주주의가 탈북자인 나의 목소리도 중요하다니 시간을 내어 뉴스를 챙겨보고 위안부, 비정규직, 소수자 등 거리의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여·야 마이크 잡고 떠드는 정치인의 말에도 귀를 열었다.


근데 신기하다. 여·야·좌·우·진보·보수(많이도 나누고 갈렸다.)는 누구를 위한 투쟁을 하는가, 억지 쓰고 객기 부리고 모두가 한 덩어리로 싸우기 위한 싸움을 지속한다. 자세히 보아도, 귀를 열고 들어도 정치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책상머리에서 배운 '민주주의'와 현실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는 너무 딴 판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오리무중이다.


정치를 잘(거의) 모르는 탈북자인 내가 내 방식대로 이해한 남한의 정치판은 이렇게 보인다.

올림픽에 출전한 각국의 100m 달리기 선수들이 출발 신호가 울리는 순간 달리기에 전념하는 대신 혼신의 힘을 다해 ‘말 춤 쇼’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 모두가 한 마음으로 누가 더 튀는 소리를 지르는지 경쟁하고 격렬한 춤사위를 자랑하며 제각각의 쇼에 열을 올린다. 관중석 또한 서로 편을 갈라서서 ‘쇼 행위’를 판단하기 바쁘다. 그중에 어쩌다 달리려고 하는 선수가 나타나면 한 무더기로 달려들어 ‘너’도 못 가게 막고 ‘나’도 달리지 않는, 요상하고 기괴하고 개탄스러운 올림픽이 아닐 수 없다.


누가 ‘적군’인지는 알겠는데 누가 ‘아군’ 인지도 모르겠는, 저 속에 ‘아군’이 있기는 한가? 의구심이 든다.


‘나의 의견이나 목소리가 중요한 만큼 상대의 의견도 존중받는’ 이 단순해 보이는 합의를 저리 어렵게 풀어가는 정치판이 이상한가. 아니면 나도 좋고 너도 손해 보지 않을 평등한 세상은(민주주의) ‘천국’(내세) 쯤에나 가야 맞볼 수 있는 이상향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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