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감히 내 남편을..."

탈북자의 눈에 비친 '아이러니 남한'

by 이샘

중국에 숨어 살 때 남한 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다. 주인집 사모님이 보던 드라마를 잠깐 훔쳐보다가 너무 재미있어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하루 밤낮을 빠져들었었다. 남한에 와서도 가끔 애청하는 드라마는 주로 로맨틱 코미디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다.

출중하게 잘 난 청춘 남녀가 우연을 가장한 말도 안 되는 장애물을 넘나들며 사랑을 키우다가 결국에는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슬픔 없는 드라마 속 세상은 지치고 암울한 현실을 잠깐이 나마 잊고 머리를 쉬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애청하는 로코물 속엔 가끔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남편(남자 친구)이 부인(여자 친구) 몰래 바람을 피우고 부인은 남편 몰래 ‘그녀’를 탐색한다. 드디어 꽁꽁 숨겨둔 남편의 ‘그녀’를 찾아낸 부인이 내연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고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감히 내 남편을 넘봐?”

어떤 드라마는 남편이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구애하고 괴롭혀도 “네가 내 남편 앞에서 꼬리 쳐서.”라며 기어이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고,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나와 결혼한 사람은 ‘남편’, 사랑하고 맹세하고 서약한 사람도 그 남자(남편)다. 그렇다면 ‘그녀’가 아니라 남편 머리채를 잡는 것이 ‘먼저’ 아닌가? 머리채가 아니더라도 부부 사이의 약속과 신뢰를 어긴 남편에게 먼저 따져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부인들은 하나같이 남편을 건너뛰고 ‘그녀’에게로 달려갈까. 모든 분풀이를 ‘그녀’에게 쏟아붓는 걸까.

남편이 무서워서, 남편을 사랑해서?

더 더 이해되지 않는 사실은'그녀'에게 달려가는 부인들의'복수'극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방영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러니다.


왜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걸까. 남한 사람에게 그 '문제'는 문제가 아닌가.

내가 탈북자여서 이해 못하는 걸까. 아니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일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행복이 성적순 이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