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눈에 비친 '아이러니 남한'
남한에 와서 대학 첫 학기 시험을 치룬 날이었다.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온 한 친구가 이번 시험 망했다며 툴툴거렸다.
그 친구가 1학기 전체 수석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뭐지?’ 싶었던 기억이 있다.
다음 학기에도, 그 다음에도 스스로를 심하게 자책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과도한 겸손인가? 아니면 경쟁심의 속임수인가?’ 혼란스러웠다.
TV 인터뷰를 보거나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귀에 걸리는 표현들이 있다.
'없었던 것 같다, 잘 했던 것 같다, 잘하도록 하겠다,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랬던 것 같다...'
"...했던 것 같다."
남한사람들은 되어 진 일을 설명할 때 정확한 자기감정표현 대신 ‘이도 저도 아닌 그 어귀 어디쯤’의 두루뭉술한 표현을 즐겨 쓴다.
처음엔 이상하다고 느꼈고 그 다음엔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그들은 왜 두루뭉술한 표현을 즐겨쓰고, 나는 왜 답답하다고 느끼는 걸까.
위의 표현을 들을 때마다 나는 표현을 바꾸어 다시 말하곤 한다.
‘없었다, 잘 했다, 잘하겠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랬다...’
질문으로 바꾸면 한결 편안해진다.
'없었던 것 같은데? 잘한 것 아닌가요? 잘해봅시다. 즐거운 시간 아니었나요? 그러지 않았나요?'
남한사람들은 자기감정표현에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것 같다.
아니면 자기감정을 잘 모르는 감정불구인가?
진짜로 겸손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나의 이 답답함에 누구든 답을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