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그림자> 외 3

by 만년필

Photo For Flower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격주로 연재되는 photo for flower는 풍경과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기 위해 시작된 여정이다. 사진과 사진 너머에 피어나는 감정들을 나누어 보자.

사진전은 작가와 제목, 특히 중요하다면 장소와 시간만 소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해석과 부연설명이 첨가되면 꿈보다 해몽을 즐기게 되기 때문이다. 해석을 읽기 전에 사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사진을 주인공으로 감상하기를 권장한다.

KakaoTalk_20250802_100323299.jpg 구름의 그림자


가끔 카페에서 'AI가 만든 것 같은 공간'을 마주칠 때가 있다. 최근 오픈한 감성 카페들일수록 이러한 공간이 많다. 이는 기존의 건축 질서와 감수성에 일치하지 않는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깨끗한 통창으로 열린 높은 상가와 공원'을 상상하고,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지붕이 전부 청록색인 다양한 모양의 주택'을 상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사진은 상당히 이국적이다.

서양식으로 보이는 시멘트 구조물은 심지어 직육면체도 아니다. 마치 푸딩을 포장한 것 같은 형태의 선에 주목하자. 불규칙해 보이는 창문, 벽돌 그림의 시멘트 블록, 하다못해 콘센트도 한 곳을 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본능적으로 왼쪽 위, 또는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듯 감상하게 한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구조물 주변이다. 아래는 조명과 철제 구조물이 만드는 선이 위를 향한다. 시선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고, 차라리 조명을 구경하게 하면서 매력을 유지한다. 위는 아예 까맣다. 왼쪽이 얕고 오른쪽이 두꺼운데, 이 또한 시선을 아래로 내려가게 한다. 위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만약 어두운 부분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 사진을 합성하면 아래의 구조물에 눈이 가겠는가? 극단적인 예시겠지만 하여튼 그러한 원리다. 다르게 말하면, 이 사진은 왼쪽에서 오른쪽뿐 아니라 아래와 위의 수직적인 시선 분배도 적절히 해준다.

장소는 양평 서종에 있는 한 카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햇빛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무심코 본 천장에 흠칫해서 곧바로 한 장 남겼다. 이 사진의 포인트는 카페 내부가 너무 밝기 때문에, 창문 밖 구름에 초점을 맞추고 편집으로 어두운 부분을 살려줘야 한다는 점이다. 무작정 카메라만 들이대면 '뭐야 왜 이렇게 어두워' 또는 '창문이 너무 하얗게 나오는데?' 하는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구름이 적절히 분배되어 왼쪽보다 오른쪽이 가득 차는 조화로움도 한몫을 했다. 창문 사진에서 구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 사진의 이름을 구름의 그림자로 지었다.

이 카페에 고마운 것은, 창문 청소가 상당히 어려운 곳에 있는데도 깨끗하게 청소해 뒀음이다. 손이 잘 가지 않으면 때가 끼고, 사진이 더러워져서 버려야 한다. 편집으로 하나하나 지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복한 손님이었다.

(브랜드 이름을 말하자니 광고 같아서 그렇고, 사진을 가져오자니 업체 공식 사진이 없어서 저작권 문제도 있었다. 양심상 힌트를 주자면, 강릉이 본점이고 모든 지점의 인테리어가 거의 똑같이 생겼다.)


다음 사진을 보자

KakaoTalk_20250802_100426602.jpg 벽돌 계단


<구름의 그림자>와 같은 곳이다. 방금은 내부가 밝다면서 이건 왜 이렇게 어둡냐고 묻는다면, 편집으로 밝은 부분만 남겼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최대한 밝은 부분에 초점을 맞춘 다음에 어둡게 만들어야 색감이 남는다. <구름의 그림자>가 천장의 벽이라면, 이 사진은 벽의 벽이다.

따로 색감을 편집하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부분은 마치 흑백처럼 보인다. 당연히 빛을 많이 받는 부분이 생동감도 두 배로 받는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간다. 지하실로 자주 내려가는 영화나 매체를 접했거나, 빛이 내려오는 방향을 유심히 관찰했다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향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오른쪽 아래에 티끌을 남겨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도록 유도했는데, 효과가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차라리 지울 걸 그랬나

이쯤에서 편집이 과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것 같다. 나는 편집도 사진의 일부라는 답을 하고 싶다. 편집이 아무리 강한 사진도 카메라 내 기능이나 기술을 조합하면 비슷하게 찍을 순 있다. 그러나 방송 장비 급의 천문학적 금액이 깨질 것이다. 그리고 저 장면을 포착하기 위한 시간도 많이 든다.

만약 양평 서종의 카페에서 누군가 거대 방송 장비를 들고 삼각대를 거치한 다음 벽만 보고 있으면 경찰이나 구급차, 또는 방송 작가 중에 하나는 출동해야 할 거다.

그러니 스냅사진으로는 최선이고, 그 금액을 줄여주는 도구가 편집이다. 일단 아무렇게나 편집한 다음 '내 의도는 이거였어'라고 말하는 유사 사진가들이 문제지, 사진을 찍을 때부터 의도가 명확한 사진의 의도를 살려서 편집하는 개념까지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누가 내게 와서 따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당신이 내 카메라로 이렇게 찍어봐."

KakaoTalk_20250802_100440112.jpg 빛과 도형


어딘지 기억은 안 나지만, 같은 장소는 아니다. 아니 사진 찍는 사람이 찍은 장소 하나 기억을 못 할까?

그건 이런 사진이 정말 어디에서나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침대에 누워서 집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하나 정도 나온다. 그럼 아무 의미 없는 사진일까? 그렇지 않다.

희소성만이 사진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 목표가 뚜렷하면 된다. 일부러 사진을 어둡게 찍고 흑백으로 만든 것도 여기에 있다. 여기저기 밝아서 지저분하거나 화려한 색이 있다면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고, 찍을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흐려진다.

이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자와 가짜 그림자의 경합이다. 마치 착시 사진처럼 그림자가 나열되어 있다. 빛은 마치 한 줄기만 나오는 듯 보인다.

사진은 오른쪽 위부터 왼쪽 아래까지 5개의 층으로 구분된다. 가장 오른쪽 위는 회색 그림자가 벽을 나누고 있다. 바로 밑의 3층과 4층의 경계는 벽의 색이 다르고 원근감도 차이가 있다. 그 밑의 2층과 3층의 경계는 거친 검은 그림자가, 1층과 2층의 경계는 벽의 재질이 다르다. 사실 저건 벽이 아니고 테이블인데, 그림자의 위치를 맞춘 것이다. 세부적으로도 구분된다. 오른쪽 둔각 삼각형은 뒤의 창문까지 5개(좁게 보면 6개)로 쪼개진다.

내 사진을 아는 사람들은 창문을 왜 남겼는지가 의문일 것이다. 그러나 창문의 십자 부분이 사람의 눈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자. 입이 보이고, 귀가 보이고, 눈썹이 보이고, 코가 보일 것이다. 은연중에 사람 얼굴이 보이는 깨알 의미도 있다. 얼굴은 처음에 보였던 안 보였던 상관없다. 얼굴만을 노리고 찍은 사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아는 만큼 보인다 했으니, 다른 사진을 보고 '이 사진은 뭔가 이상한데?'싶을 때 얼굴을 찾는 습관이 생길 수 있다. 사진작가들이 종종 사용하는 연출 기출문제 중에 하나다.


모든 부분을 다 뜯어보면 의미 없는 사진에 의미가 생긴다.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사진을 발표하진 않을 테니까.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딱 봐도'의 지점을 넘기는 거다. 딱 봐도 아무 의미 없는 사진인데 억지로 의미를 끼워 맞추면 보는 사람이 불쾌해진다. 그러니 그림자의 선을 맞추고, 도형을 맞추는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한다. 일종의 떡밥을 던져놔야 '이게 무슨 뜻일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다 얼굴이라도 하나 찾아야 보람을 느끼고 실험 사진에 접근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수는 없다. 아예 관련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 사진만 봤을 때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 있다. 그런 분들을 위해 해석과 도슨트가 준비되어 있다. 사진관이나 그림 전시회를 가면 담당자 혹은 작가가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로 실컷 떠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에 하나라도 이해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축복이나 저주나 둘 중 하나는 받은 사람이다. 앞으로 완벽한 사진을 보면 그 희열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짜릿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부족한 사진을 보면 실망하고 후회하게 될 테니까. 황금귀, 미식가, 평론가가 원하는 것을 거머쥐기까지 불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는 일생의 대부분이 시간낭비다. 심지어는 그들이 거머쥔 원하는 것 또한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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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벽'이라는 주제로 사진 소개를 해보았다. 실제 작가들의 사진전은 이보다 더 엄숙하고 전문적이다. 나 또한 내가 가야 할 길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전문가들이 '이 사진으로 실제 사진전을 열 생각이 있느냐'라고 물으면 '불가능하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아니면 그럴 여유가 없어서? 그게 아니라 사진을 거대하게 인화하는 과정에서 흠집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초점이 흐린 부분이라던가, 픽셀 단위로 맞지 않는다던가, 화질이 좋지 않거나, 정작 걸어놨더니 볼품없는 경우 등등. 사진가가 새벽에 비명을 지르면서 깰 일들이 실제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사진관을 운영하고 전시회를 개최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의 헌사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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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