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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룡 May 27. 2022

8. 너 아니라도 그거 할 사람 많아.

 ‘그 사람 아니라도 사람은 많다.’


‘너 아니라도 그거 할 사람 많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아마도 약간 못된 상사가 거의 입에 달고 사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나라의 인구만 해도 5000만이 넘어간다. 집 밖으로 한 발만 나가면 사방 보이는게 사람인데, 사람많다는 사실만 볼게 아니라, '너'만 보인다 해야 한다. 사람 많다. 하긴 그 말을 하는 사람 조차도 ‘그 사람 아니라도 사람은 많다.’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팀장이건, 부장이건, 심지어는 CEO라도 그렇다. 그러니 그렇게 분해 할 것 없다.


심지어는 이순신 장군님이 아니셨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명량해전 등등에서 왜군을 이길 수 있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구든 그 위치에서 그 정도의 환경이라면 그런 거 다 할 수 있었다.' 물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충분히 하고도 남을 그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와서 살다보니 정말이다. 일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너무나 탁월하다. 그러다 보니 '너 아니라도 사람많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이러한 사고로 인한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갈아치우고 치우고 치우고 할 것인가? 들어가는 비용이 눈에는 실물로 안보여서 그렇지 오만원 지폐로만 쌓아도 화성도 갔다 왔을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기업문화가 형성되어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하면 웬만해서는 개인의 능력 발휘가 그렇게나 눈에 띄는 그런 문화는 아니다. 한때 나는 외국에서 초 고속으로 승진해서 어린나이에 최고 경영자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멕시코로 부임해서는 닛** 멕시코를 담당하게 되어, 닛** 자동차의 전임 CEO [지금은 일본에서 도망친] 카를로스 곤씨에 대해서도 많은 기사와 책을 읽곤 했다. 또 다른 우리 경쟁사의 CEO를 탐구(?) 하기도 했었다. 다 이유는 있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해외 생활이 오래 되다보니 그걸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옆에 나하고 별로 능력 차이도 없는 사람이 승진 했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내가 승진할 차례인데 저 사람이 되었다면,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 인가? 뭐 서류상으로는 어쩔 수 없다. 승진했으니 내가 지금 지랄발광(?)을 해도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마음으로는? 주변사람들도 본인과 같은 생각인가? 이런 경우가 참 많다. 그런데 내가 겪은 외국에서의 회사 생활에서는 이게 조금 다르다. 어떤 사람이 승진을 하면 제일 먼저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럴만 하다.'


딱 보인다. 일 잘하는게 딱 보인다. 그러니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일은 잘 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너 아니라도 그거 할 사람 많아.'라는 말이 안나오게 된다.


우리와는 달랐다. 생활의 중심이 일에 있지 않았다. 회사에 있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생활의 중심을 약간 회사로 기울이면, 회사에서는 능력자로 보이게 된다. 승진을 시키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된다. 실적 중심인건 말할 것도 없다. '너 아니라도 사람 많아.'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 나 아니면 안될껄.'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그렇게 능력자가 되니 이직이 자유로운 문화에서 더 더욱 돋보이게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 역시 공사라고 딱 구분한다면 사의 일정 부분을 공으로 옮겨 와야 했다.


'우리나라 보통 직장인의 능력 정도 아닌가?'


언젠가의 일이다. 당시 영업매니저가 있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내가 지금까지도 내가 겪은 멕시코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법인장이었지만, 그녀와 같은 사람과 일을 같이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만큼 잘하는 사람이었다. 일도 잘하고 그러다 보니 일도 많았다. 나의 불찰이 컷다. 일에 대한 그녀의 고집을 간과했었다. 당시 그녀의 고향은 다른 지방이었고, 그녀의 남편은 그 다른지방에서 있었다. 소위 주말부부인 것이다. 초기법인이라 일이 매일 산더미 같았고, 우리는 고군분투 했다. 그러다 일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그녀는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녀가 아니면 안되었다.' 주말에도 남편을 만나러 가는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얼마후 인사매니저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그 인사매니저가 그녀가 이혼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실은 충격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나 역시 안면이 있었다. 딱 보기에도 좋은 부부였다. 그런데 이혼이라니.. 얼마후 나는 그녀를 사무실로 불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여기 일은 당분간 나와 팀원들이 진행을 할 것이니, 얼마간이라도 휴가를 가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현재 법인의 이슈가 많고 해서 본인이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말을 해 왔다. 건강, 이혼.... 이런 말들이 머리에 떠 올랐다.


실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녀는 우리 법인의 핵심이었고, 그녀의 부재는 더 많은 비용과 시간소요가 있음을 의미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결단이 맞기를 바라면서 그녀를 해고하기로 하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결정에 아직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해고를 하면서 성의 있는 추천서를 써 주었고, 그녀가 남편과 가족들이 있는 그 지역에서 일을 얻기를 바랐다.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으니 일자리도 금방 얻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문제는 우리 였다.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더 들기는 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도 일은 돌아간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과 시간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국가에서 다른 법인으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새로운 자리에서 그녀에게 연락을 하였다. 다시 한 번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러고는 싶지만 당시 그녀의 남편이 당분간 병원엘 다녀야 해서 옮기기가 어렵다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내가 멕시코에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면 제일 먼저 그녀가 떠오른다. '그 사람이 제일 그 일에 맞는다.' 이다. 나의 업무 스타일이나 나의 리더십과 맞는게 아니라, 그녀의 능력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나는 나의 업무 스타일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일에 그녀가 적임자라는 것이다. 그걸 인정하는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상황이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아마도 내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 '우리나라 보통 직장인의 능력 정도 아닌가?'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 안되면 되게하는 그런 경우의 수도 너무나 많았으며, 짧은 기간 동안 그 수없이 많은 성공신화를 만들어온 우리다, 정말 자랑 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자랑스러움을 그 신화를 만들어온 수없이 많은 '너'와 같이 나누어야 하지 않겠나? 지금도 성공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없이 많은 '너'들에게 '너 아니면 안된다.'라고 해주면 안되나? 같은 값이면 말이다. 돈도 더 많이 주고, 승진도 시켜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은 말이라도 말이다.


P.S. 덧 붙이자면, 멕시코로 다시 돌아온 나에게 멕시코에서 각 부문에서의 ‘너'는 다섯명이다. 다 뿔뿔이 흩어져서 다른 곳에서 일들 하고 있지만, 그 '너'들에게 감사하며, 이들을 다 모이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


 ** 위 글의 내용은 개인적 경험에 의거한 개인 의견입니다. 모든 상황들이 그렇듯이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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