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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룡 Jun 26. 2022

10. 세상이 변했다. (회사생활의 한 단면)

실적에 의거 공정하게 평가된다고 확신할 수 있으면 된다.

내가 주는 공짜는 있을 지라도 남이 주는 공짜는 절대로 없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를 보면, 삶을 단순하게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비교적 단순하게 보기도 한다. 나의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회사생활'로 보면, 그냥 나의 삶 전체를 '회사생활' 하나로 퉁(?) 칠 수 있다. 어떻게 사셨어요? '회사생활했어요.' 뭐 하셨어요? '회사생활했어요.' 그렇게 나의 삶에 대한 그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회사생활'이란 용어가 들어가면 답이 되는 그런 삶이었다. 서두가 약간은 심각해지긴 했는데, 그렇다고 '회사생활'이 정작 나에겐 어땠냐고 하면,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서도, 나는 재미있었다. 어떻게 회사생활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느냐? 는 질문이라고 하면, 이게 답이 애매해질 수 있다. '그냥 재미있었어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주는 공짜는 있을 지라도 남이 주는 공짜는 절대로 없다. 내가 주는 공짜는 봉사와 희생이라는 용어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엔 봉사도 공짜가 아니다. 봉사 포인트로 적립된다. 그러니 궁극적으로는 공짜는 없다. 내가 회사생활을 즐겼고, 재미있게 했다는 이야기가 편했다고 느껴진다면 내가 용어 선택을 잘 못한 것이다. 나는 분명히 돈으로 표현되는 월급을 받았고, 그 돈만큼 혹은 그 이상의 일을 했다. 안 했다고 하면 나는 월급을 받지 못했을 것임을 분명하게 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런데 그런 과정들이 나에겐 재미있었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멕시코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가서 얼마 동안 나는 약간 방황을 했었다. 적응이 필요했다고나 할까. 그리곤 얼마 있다가 코로나 상황이 발생되어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고, 회사에서 그렇게나 많은 회식도 없어졌다. 아무리 첨단의 시대를 살아간다 해도, 화상으로 보는 것과 만나서 밥 먹는 것과는 정말이지 많이 다르다. 특히나 멕시코에서는 더 그랬다. 밥 먹는 게 일이었다. 그러다 코로나로 상황이 이렇게나 변하니 참 막막했다. 그리곤 한글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쳤었는지, 한글로 써져서 종이로 프린트된 것들이 있으면 미친 듯이 읽어 댔었다. 신문이든 책이든 뭐든 한글로 쓰인 모든 것들이 손에 잡히면 그저 읽어댔다.


그렇게 읽다가 보니, 우리나라에 30대 작가님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회사생활에 대한 에세이도 많고, 회사생활을 하다가 퇴직 후에 우리 세대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을 과감하게 해가는 용감한 사람들도 많았다. 참 다양했다. 금융 등에 대한 전문가적 책부터 우울증 극복기, 회사생활 등 정말 너무나 다양했다. 그런데 이렇게 젊은 작가님들의 책을 읽어가다 보면 반드시 표지나 말미에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 등의 SNS 주소가 명기되어 있었다. 다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대부분 책을 내기 전에 SNS에서 자신의 관심사나 생활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경우가 많았다.


얼마 지나자 SNS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기왕에 관심을 가진 거 학원에 등록해서 매주 2~3회씩 야간에 학원에서 SNS를 배워 갔다. 재미가 있었다. 그렇다고 SNS에 적극적이진 않았다. 그저 처음엔 이게 뭐지?라는 호기심이었고, 두 번째는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오랜만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서먹하던 시기여서,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기도 하였다.


SNS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이게 대화 방식이 되었다.


너무나 조용했다. 오랜 기간의 멕시코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본사에 처음 출근하는 날 나는 사무실에 들어서서의 첫 느낌이었다. 10여 년 전에도 근무를 했던 곳인데, 이제 들어서니 너무나 조용했다. 얼마 동안 근무를 해보니 젊은 친구들이 말이 없었다. 어쩌다 전화가 오면 거의 소곤댄다. 오랜만이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직원들이 많았는데, 아침에 출근해서 고개 끄덕 인사하면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하는 친구도 있었다. 뭐지?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대화를 한다는 말인가? 그러다 얼마 안 있어서 내 PC 화면 귀퉁이에서 띠링하면서 메시지 표시가 되어 있었다. 내용인즉 '메일 드렸습니다. 확인하시고 의견 주세요.'라는 메시지였다. 사내 메신저를 통해서 보내온 메시지였다. 보낸 사람을 보니, 바로 조기 앉아 있는 직원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그렇군 이게 대화 방식이 되었군. 전화보다도 메신저가 대화하기가 편하고, 옆사람이 들을 수도 없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훨 낫다. 그러니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 면피용 : 그렇다고 회의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회사의 특성상 없을 수는 없다. 없어졌다기보다는 많이 줄었다는 표현이 맞다. 나 역시 멕시코 근무 시 아침에 30분 간부 회의는 반드시 했다. 단, 이슈 해결이 아닌 전날 판매 실적 체크 회의였다.


SNS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이게 대화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한 대화 방식은 그 매체가 너무나 다양했다. 내가 여행 가서 뭘 했는지 만나서 구구절절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사진 몇 장 SNS에 올리면 된다. 회의보다는 회의 자료는 공유 문서함에 올려놓았고, 그거 보면서 메신저 회의하면 된다. 키보드 입력 속도가 대화 속도가 되니 지루할 일도 없다. 이게 대화나 업무 진행 방식이 되었다. 그러니 조용할 수밖에 없다. 키보드 소리도 요즘 키보드는 소리가 저음으로 나게 만들어져 나온다.


우리 세대에서는 이런 회사생활의 변화가 낯설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문화 변화에 적응을 해서 살아가고, 아직 회사에 몸담고 있다면 이런 추세의 변화에 같이 흘러가 주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 '꼰대' 소리를 듣는 것 같다. 내가 SNS를 배우고, 아마 보통의 젊은이보다 SNS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더 많이 알 수도 있을 것인데, 실제 활용으로 보면 나는 완전 초보 수준일 것이다. 여전히 공부 중이다.


학원에서 SNS를 배우면서 여러 가지 숙제도 하고, 실습도 하면서 직장인 커뮤니티에 가입도 하고 의견도 쓰고 댓글도 남기곤 했다.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대화들이 그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 다양한 생각과 상황의 회사생활에 대한 사례들이 넘쳐 났다. 그런데 이런 표현의 장이 많아지고 다양해서 그런지 우리 세대에서 해왔던 회사생활보다도 더 많은 고민과 걱정과 우려들이 넘쳐 났다. 정말이지 회사생활을 하는 우리 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고민과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인스타나 페북 등을 보면 다 행복해만 보이는데, 이상하게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를 보면 갈등, 퇴직, 우울 등과 같은 글들이 넘친다. 그걸 보면서 동일한 한 사람이 한쪽에는 행복에 젖어있고, 한쪽에서는 회사생활을 못 견뎌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 글의 주제가 회사생활로 잡았으니, 회사생활 이야기로만 보면 그리 밝지 않은 SNS의 모습을 본다. 고민들이 너무나 많다.


왜 이럴까? 분명히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


왜 이럴까? 분명히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 세상이 좋아지고 있음은 우리 세대 이상의 사람들은 거의 확신한다. 그 Jump up의 와중에 우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봐왔다. 그렇게 좋아지는 걸 봐왔다. 그렇다면 왜 우리 자식과 같은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걸까? 우리 자식들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힘들다.'라고 하면 부모나 직장 선배인 우리들이 하는 말이 있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우리 때는 이랬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 그 정도 고생이 고생이냐. 견뎌봐라. 굶어봐야 안다.' 역시나 꼰대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왜 이럴까?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나의 결론은 선택의 여지가 너무나 많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비교의 대상이 너무나 많아졌다. TV를 예로 들면, 우리 세대는 어려서 TV 채널이 3개 정도였다. 나의 기억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3개로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보는 TV 프로그램은 권투, 레슬링 경기, 아버지 보시는 뉴스, 어머니 보시는 드라마 '여로', 누나가 보는 명화극장 정도였다. 그게 다다. 게다가 리모컨도 없다. 채널을 돌리려면 겨울 방바닥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와야 한다. 지금은 소파에 누워서 TV를 켜면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 드라마를 집중해서 보다가 약간 '짜증'나는 상황이 나오면 언제든 채널을 돌릴 수도 있고, 채널을 순간순간 돌려가면서 볼 수도 있고, 리모컨도 있다. 선택의 여지가 너무나 많다. TV를 보면서도 뇌가 쉴 틈이 없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회사생활도 그렇다. 나는 이직 생각을 별로 해보진 않았다. 아니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을 한다 해도 딱히 갈 데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한번 몸담은 회사를 이직한다는 게 문화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그렇게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그렇게 있지 않았다.


참 아이러니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고민과 걱정을 덜어주는 상황이 참 역설적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따라가면 된다. '연공서열' - 경쟁? 그런 거 없다. 분명히 지금은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실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이기에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 달성에 대해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했을 때의 성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통의 전제는 있다. 윤리적으로 사심 없는 업무수행 자세를 전제한다. 수없이 많은 인사평가 기준, 수없이 많은 관계, 수없이 많은 상황들을 고려하여 평가제도나 문화 쇄신 방안 등이 바뀌어 왔지만, 나는 그 기준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적에 기반한 평가가 그래도 공적 부분에 속하는 회사에서는 가장 공평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적을 언급한 이유는 작금의 젊은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올라와져 있는 고민을 들여다보면, 상사와의 관계, 후배와의 관계, 업무가 본인에게 집중되는 경우, 과중한 업무, 상사 또는 팀 간의 원하지 않는 회식, 업무를 마친 후 동반 야근에 대한 눈치, 이직 등이었다. 물론 최근엔 수없이 많은 성공스토리 - 유튜버, 주식, 연예인 등 -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많은 고민과 걱정들을 실적으로 녹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상사의 역할은 목표 설정에 상당 부분이 집중되어야 한다. 최고경영진의 회사 비전과 경영목표 설정에 따라 이를 각 부서별로 분배하고, 이를 각 팀장, 직원 개개인의 목표가 설정되면, 직원들은 자신들의 목표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팀원이 목표 작성해서 올려서 승인받는 방식이 아니라, 팀장과의 치열한 공방(?)에 의해 설정된 목표를 가지고, 만약 그 직원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사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하면 상사와 협의를 하면 되고, 타 부서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하면 타 부서와 긴밀한 관계 설정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건 목표 설정 및 달성에 대한 그 직원의 몫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면 된다. 그리고 평가를 그렇게 받으면 된다. 그리고, 직원의 능력이 부족하다 할 때는 그 잉여 업무는 팀장이 가져가야 한다. 직원들의 업무 밸런스에 대한 책임은 팀장에게 있어야 한다. 직원 부재중 업무는 직원들 간 배분이 아니라, 팀장이 가져가야 한다.


 선택의 여지를 줄여주는 일이다.


선택의 여지를 줄여주는 일이다.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직원이 상사와의 관계, 회식 참여 비율, 회사 내 정치 등등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내가 열심히 해서 본인과 회사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면 본인은 실적에 의거 공정하게 평가된다고 확신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많은 고민과 걱정들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어떤 방식이 회사생활에 대한 그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해결해 왔는가? 지난 글에서 잠깐 언급했었다. 멕시코에서 비교적 큰 회사에서 누군가가 승진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럴 만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30대나 40대들이 회사의 주축일 것이데, 그분들을 보면 정말이지 너무나 능력이 뛰어나다. 그런 능력들을 '배부른 소리 한다.'라고 우리 세대가 그냥 뭉뚱거린다면 우리는 퇴보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그런 고민과 걱정들이 꼭 지금 젊은 사람들의 생각뿐이었겠는가? 우리도 그랬고, 우리 부모님들이 젊으셨을 때도 같은 고민들이 있었다. 그게 주변 상황만 달라진 것이다.


회사에서는 회사의 목표 달성에 집중하고, 회식에 참여해야 하는지, 근무시간 후 상사 카톡에 답을 해야 하는지, 명절에 메일이나 전화를 해야 하는지, 주기적으로 안부 메시지를 드려야 하는지 - 물론 마음으로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 그런 고민 말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그런 행복한 회사생활을 추구해야 되지 않겠나?


 ** 위 글의 내용은 개인적 경험에 의거한 개인 의견입니다. 모든 상황들이 그렇듯이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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