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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룡 Jul 10. 2022

11. 보고서를 초등학생도 알 수 있게 작성하라고?

나의 회사생활에서 상사에 대한 나의 취향은 실무형 상사였다.


통상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를 하다 보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보고서가 잘 작성된 보고서다.’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의 초등학생이란 용어를 언급한 것에 초등학생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음을 먼저 밝혀 둔다.) 나는 입사해서 한 1년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 이 말이 이상하게 좋지 않았다. 도대체 보고를 받는 사람이 초등학생인가? 아마도 보고를 받는 사람이라면 회사생활을 최소 5년 이상은 한 사람일 것인데, 그 세월 동안 도대체 뭘 했기에 업무에 관련된 보고서조차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라는 의구심을 나는 가진다.


이 말은 우리나라의 회사 문화는 전문가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과 상통한다. 제너럴리스트 중심으로 양성이 되다 보니 딱 초등학교 수준의 업무 지식만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외로 나가는 프레젠테이션이나, 타 부서의 사람들이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대상일 경우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보고서 (프레젠테이션) 작성이 의미 있다. 동시에 정작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업무를 잘 알지 못하면 보고서의 난이도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보통은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면 직속 라인으로 보고 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거의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심지어는 분명 아침에 출근해서 클릭 몇 번 하면 되는 사항도 반드시 출력하여 보고를 받는 분들도 많다. 개인에 따라서 취향이 다들 다르겠지만, 나의 회사생활에서 상사에 대한 나의 취향은 실무형 상사였다. 아무리 깨진다 한들 실무형 상사하고 일을 할 때가 재미있었다. 왜냐하면 깨지면서도 배울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윗사람보다는 아랫사람이 많게 될 정도의 상사가 되어서 나 역시 실무형 상사가 되고자 노력했다. 내가 존경했고, 내가 되고자 했던 상사의 모습으로 내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기를 바랐다.


한 10년 정도 회사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을 때, 어느 임원분(나의 직속 라인은 아니었다.)이 사무실 시찰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러다 지나가시면서 뭐라 뭐라 하시고, 격려도 하시고 가셨다. 그분은 좋으신 분이었다. - 먼저 언급을 해두고. 그분이 가시고 난 후에 우리 직원이 "정말 아시는 게 많네. 모르시는 게 없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런가? 나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회사생활에서 그 관련된 분야에서 35년 이상을 하신 분인데, 그 정도 아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물론 밖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


그렇게나 많이 아시는 분들이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왜 그렇게나 쉽게 쉽게 쓰라고 하시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숫자 하나만 봐도 이게 관련 업무에서 뭐를 말하는지 알아야 할 정도로 업무에 관심이 있어도 시원하지 말지 할 판에, 구구절절이 초등학생도 알아볼 수 있도록 작성하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업무를 하면서 화려한 내부 보고서에는 약간의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외부 보고서는 당연히 쉽고 잘 써야 한다. 용어 선택도 잘해야 한다. 하지만 내부 보고서는 다르다. 특히나 영업부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숫자로만 이야기해도 의사결정이 충분하다. 그럼에도 내부 보고서에 시간 소모가 너무 많은 경우를 본다. 업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초등학생도 알아볼 수 있는 용어를 선택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의 회사생활 노하우 중 하나는 '나에게 쓰는 보고서'이다.


나의 회사생활 노하우 중 하나는 '나에게 쓰는 보고서'이다. 나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에게 쓰는 보고서'를 작성하곤 했다. 실제로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각 부서별, 고객사별 등등으로 워낙 동시다발로 일이 발생되어 서로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나에게 보고할 보고서를 한 장으로 작성한다. 그렇게 하면 서로의 연결고리가 보이고, 의사결정을 하기에 용이하다. 아울러, 누군가를 만나거나 - 멕시코에서는 미팅을 밥 먹으면서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 하면, 공식적인 미팅 보고서는 같이 참석한 직원이나, 또는 내가 작성을 해서 회사 메일 등에 올려 두지만, 나 자신만 볼 수 있는 회의록을 나의 개인적 의견과 함께 작성해 둔다.


또한 나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조직과 양식을 아주 좋아한다. 회사생활 역시 개인의 성향이나 스타일이 상당히 작용하는 부분이니 이도 역시나 나 개인의 스타일이다. 조직과 양식은 회사생활의 기본이라고 나는 아주 강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조직이 갖추어지지 않은 프로젝트의 성공을 본 적이 없다. 동시에 조직이 구성되어 있더라도 조직에서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관리하는 양식이 잘 작성되고 구비되어 있지 않은 프로젝트의 성공을 역시나 본 적이 없다.


부서 이동을 하게 되면 나는 반드시 그 새로운 부서에서 관리되는 양식을 먼저 본다. 양식이 없다고 하면 양식을 새로 만든다. 매일 숫자를 채워가고, 주간 누계, 월간 누계를 관리하다 보면 조직의 효율이 극대화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아주 쉽게 쓴 보고서는 나에겐 필요하지 않았다. 


초등학생도 알아볼 보고서 작성을 위하여 용어 선택하고 맞춤법(이도 보고 받는 상사가 누구냐에 따라 맞춤법도 바뀐다.)은 맞는지 사전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요즘엔 검색하면 다 나오지만 여전히 나는 헥갈린다. '님'자를 붙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씀'이 맞나? '말'이 맞나? 그렇게 보고서에 '님'자 쓰지 말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님'자 안 적어 넣었더니, 보고 받으시는 분이 '너는 상사에 대한 존경도 없냐?'라고 하시기도 했다. 


정 보고서가 그렇게나 많이 필요하다면 보고서 양식을 아주 구체적으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 회사의 규모에 상관없이 보고를 받으시는 분이 직접 보고 양식을 만들어 주고, '고민할 거 없다. 나한테 보고하는 건 이 것만 해와.' 하면 된다. 멕시코에서 영업 디렉터 하면서 나는 매니저에게 아침에 딱 두 개 숫자만 알려 달라 했다. - 법인 설립 초기라서 시스템이 구비되지 않았었다. - 하나는 어제 판매된 수량, 하나는 금월 누계, 딱 두 개면 충분했다.  


 ** 위 글의 내용은 개인적 경험에 의거한 개인 의견입니다. 모든 상황들이 그렇듯이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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