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다는 말이 입에 올랐다.
'쉽지 않다.'는 말이 입에 딱 붙어버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입에서는 '쉽지 않다.'가 튀어나온다. 이게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나온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순간순간이 쉬웠던 적이 있긴 했던가? 세상에 공짜하고 쉬운 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내가 굳이 그걸 입에 올린다.
뭘 해도 쉬운 것은 없다고 한다면 그걸 어차피 해야 하는데, 시작을 '쉽지 않으니, 난 할 수 없다.'로 한다면 그게 되겠나?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입에 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차 싶어서 그 말을 집어넣기도 하는데, 한번 찰싹 붙은 말이 그렇게 쉽게 떨어지겠나?
통상 나는 고객사를 만나거나, 멕시칸 친구들을 만나면 사장과 단 둘이 만나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람들과 이야길 하다 보면 '쉽지 않다.'는 말이 쏙 들어간다. '그거 쉽지 않아.' 하면 대번에 '쉬운 게 있어? 하면 되는 거지.'라는 말이 바로 돌아온다. 특히나 창업주일 경우 더 그렇다. 물려받은 사장의 경우는 두 가지로 나눠진다. 창업자인 아버지와 같이 사업을 일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아버지와 같이 사업을 일군 사람의 경우-나는 이럴 때면 미겔이란 친구가 생각난다.- 사업은 어렵다는 자체를 인정한다. 그리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친구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두려움의 건너편'이란 표현이다.
이 친구와 멕시코 시티의 이국적 식당에서 저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나는 때로는 두렵다.'라고 이야길 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두려움을 보지 말고, 항상 두려움의 건너편을 보라.'는게 이 친구가 그날 나에게 한 말이었다.
이후 내가 몬테레이로 옮기고 나서도 만남을 지속하는데, 이 친구에게 그날 그 말을 기억하냐고 하니, 자신이 너에게 한 말이 기억이 딱 나진 않지만, 그 말이 내 생각이고, 자신의 말이란 건 안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쉽지 않다.'라는 말을 30여 년간 그렇게 해본 기억이 없다. 이게 최근의 일인 것이다. 왜 그럴까? 나이 탓인가? 이를 인지한 순간부터 의식적으로 '쉽지 않다.'는 말을 떨쳐내고 있다. 살아간다는 자체에 '쉽지 않다.'가 더해진다고 하면 얼마나 더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