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아스깔리엔떼스(Aguascalientes)로 가고 있다. 산루이스포토시에서 아구아스깔리엔떼스까지는 차로 2시간여 걸린다. 빨리 달리면 1시간 30~40분 만에도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빠르게 달리진 않는다. 주변도 봐가면서 달린다. 오가는 차도 별로 없다. 가다 보면 시골 마을을 지날 때도 있지만 주로 사막이다. 사막이라 해서 모래로만 덮여 있는 사막은 아니다. 선인장과 작은 나무들이 뒤섞여 있다. 가면서 음악도 듣고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혼잣말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다. 자신에게 끊임없는 자신감의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다. 내가 잘 써먹는 거다. 마음이 약해지면 나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를 만들어서 몇 번이고 되뇐다. 신규 프로젝트를 혼자 감당해 내야 하는 무게가 마음에 남아 있다. 본사라는 거대한 보호막이 나를 감싸주고는 있지만, 신규 프로젝트는 성공해야만 했다. 그게 바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멕시코에서 신규 프로젝트는 아구아스깔리엔떼스라는 도시에서 이루어진다. 멕시코에서 작은 도시중 하나이다. 작은 만큼 사람들이 좋다. 사람들이 좋다는 건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살아보면 안다. 순박하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산루이스포토시의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도시적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구아스깔리엔떼스보다 산루이스포토시에 더 오래 살았는데, 친한 멕시칸 친구는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 더 많다. 스페인어로 풀이를 하면 아구아스깔리엔떼스는 Aguascalientes다. Agua는 물, Caliente는 뜨거운이란 의미이다. 실제로 이 의미가 도시 이름에 녹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른다. 의미대로라면 주변에 온천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알아보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페인 사람들이 지배 당시 주변의 온천을 다 메웠다고 한다.
멕시코 중부에 외국에서 투자한 많은 회사들이 들어와 있다.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서 한두 시간 거리에 큰 회사들이 투자해서 공장을 짓고,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에 가면 일자리가 많았다. 그럼에도 아구아스깔리엔떼스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설사 그곳으로 가서 일자리를 구했다 해도 얼마 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멕시코 사람들의 가족에 대한 유대는 유별나다. 우리가 보면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등지에 살면 멕시코보다 나을 것 같은데,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미련 없이 돌아온다. 왜 돌아왔냐 물으면 망설임이 없다. 가족들이 여기 있어서라는 거다.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들이 있는 곳이 여기라는 거다.
나의 직번은 0000번이었다. 하긴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당시엔 현지에선 법인 설립부터 혼자 감당을 해야 했다. 그러니 내가 법인의 첫 번째 직원이긴 했지만, 담당업무가 처음부터 전 분야를 총괄해야 하니 직번을 0000으로 했다. 당분간은 혼자서 모든 업무를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하면 나만의 업무 규칙이 필요했다. 혼자였지만 업무 규칙을 만들지 않으면, 사람 정리상 해이해질 수도 있다. 그러니 규칙을 만들고 그게 나중엔 법인의 규정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건설 관리에서 판매, 관리 세팅은 전 법인에서 진행을 한 바 있으니, 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법인 설립에서 부지 선정, 설비 구매와 같은 초기 진행은 혼자서 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엔 혼자서 감당해 가야 했다.
출퇴근 규칙부터 만들었다. 가족들은 산루이스포토시에 있고, 나의 업무는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서 해야 했다. 멕시코 관행상 대면 회의가 훨씬 효과적이기도 했고, 매일 잠재 고객사, 건설사, 주정부와의 회의가 끊이질 않았다. 근무시간은 전에 있던 법인과 같이 8시 시업, 5시 종업으로 정했다. 점심시간은 잠재 고객사와 시간을 맞추었지만,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로 했다. 8시 시업이니 월요일 아침 일찍 산루이스포토시에서 아구아스깔리엔떼스로 이동했다. 금요일엔 5시 좀 지나서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서 출발을 했다. 사무실은 없었다.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서 작은 호텔에 장기 숙박을 정하고, 숙박을 하면 회의실은 예약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호텔로 정했다. 회의가 없을 때는 회의실이 나의 업무 장소였다. 앞으로 한 두 달은 이렇게 해야 한다. 직원이 없으니 임시 사무실을 임대할 이유가 없었다.
부지가 정해지고, 직원 채용에 나섰다. 제일 급한 건 인사 노무 담당 매니저와 재무 담당 매니저였다. 와중에 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는 인사 담당 직원이 연락이 와서 나와 같이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나로선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천운이다. 그 직원에게 고맙다 했다. 우리 첫 번째 직원의 직번은 0001번이었다. 그 직원이 온 후에 우리는 매일 아침 모닝커피를 했다. 아침에 스타벅스에서 만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회의를 했다. 그리곤 헤어졌다. 나는 회의를 하러 다녔고, 그 직원은 주정부와 재무담당 직원 채용을 담당하였다. 그리곤 오후 4시경 다시 만나서 그날 일을 정리하고, 다음날 할 일을 정했다.
부지를 선정하고, 여러 가지 이슈들로 협상이 시작되었다. 이 협상은 지난했다. 매일을 만나서 세네 시간을 때론 고성을 질러가면서 협상을 해야만 했다. 영어로 감정을 실어서 명확하게 의사 전달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영어는 그들에게도 외국어였다. 그러니 감정을 실어내기엔 모국어보다는 모자람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영어 실력은 장기간의 협상으로 늘어가는 것이 보였다. 최종 협상을 마무리 해갈 즈음에 서로는 식사를 하면서 그 얘기도 했다. 서로가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 사람은 참으로 희한하다. 회의 시간엔 그렇게나 때론 양보 없이 싸워대는데 정이 든다. 그리고 친해진다. 사심으로 싸워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만약 사심이 들어가 있었다면 싸운 후에 그렇게 친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싸웠던 친구들은 한국에 와있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