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남

by Miel

20대에 길고 짧은 연애를 번번이 상처로 끝내고, 나는 나 자신이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기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2-3년쯤 연애를 쉬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했다.


열심히 모은 돈으로 1년쯤 훌쩍 혼자 세계여행도 떠나고, 어학공부도 하고, 오랜 공부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준비하면서 혼자 지내는 삶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다.


학생신분으로 지내는 마지막 해를 보내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우중충하게 구름이 낀 하늘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5월의 평일에, 문득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이 지역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외모. 가슴까지 오는 긴 머리에 히피 같은 옷차림. 누가 봐도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 남자는 카페모카를 한 잔 시키고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날씨 탓인지 다른 손님도 없었고, 마침 세계여행에서 다져진 친화력(?)이 절정에 달해있던 나는, 조금은 이상해보이는 그 낯선 남자와의 대화가 반갑게 느껴졌다.


남자는 남동생과 같이 내가 사는 나라에 여행을 왔다고 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도착한 이 도시가 마음에 들어서, 한 달이나 두 달쯤 이 도시에서 여행을 하기로 했다고 하며 갈 만한 곳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고 친구가 되었다.


그는 관광지에 가자며 아침 일곱 시에 약속을 잡기도 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다들 싫어하는 냄새 고약한 현지 음식을 행복한 얼굴로 먹기도 하고, 맨발로 강가를 걸어 다니기도 하는가 하면, 처음 만난 아무 하고나 즐겁게 대화를 했고 풀밭에 난 꽃을 뜯어먹기도 했다. 겉으로도 충분히 예사롭지 않았는데, 알면 알수록 더 이상한 사람이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그런 이상한 남자에게 끌리고 있는 나였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편견이라는 걸, 처음부터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이 남자라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용히 받아들여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나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몇 주쯤 지나고, 어느새 우리는 연인이 되어있었다.

나도, 그도 사랑에 상처받고 분명 다시 연애를 할 마음이 없었는데 모든 것이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주위 사람들은 곧 자기 나라로 돌아갈 예정인 데다 겉모습이 수상하기까지 한 외국인 여행자와 사랑을 시작한 나를 걱정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과의 장기연애에 실패한 경험이 있던 나는, 물리적인 거리가 반드시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런 기대도 예상도 하지 않고, 그냥 우리의 관계를 지켜보기로 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그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나를 만나 본인의 삶이 바뀌었다며,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달라고 했다.

그는 다른 남자들만큼 짧아진 머리를 하고 본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다시 혼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언제 그를 다시 만나게 될지, 아니 언젠가 다시 만날 수는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롱디를 시작했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연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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