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이자 충동적이었던 선택
죽고자 했다. 이기적 이게도 모든 걸 버리고서 도망칠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혹시나, 애석하게도 버티는 것만은 익숙해져 있던 내가 정말로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을 때. 아슬아슬한 젠가처럼 와르르 무너져버리기 전에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만큼은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
실은 알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아파하고 슬퍼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랜 시간 망설였고 마음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그렇게 둔 채로 꺼내지 않으려 했다. 상상만으로 끝내려 했다. 순간의 망설임은 점점 실현 불가능한 나의 몽상으로 바뀌어갔다.
그런 줄만 알았는데, 실은 전혀 아니었다. 몽상을 너무 많이 하면 그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아니, 사실은 알면서도 외면했던 나는 정신적으로 불안정의 끝을 달려 벼랑 끝까지 내몰리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멍청했다. 그만둘 기회가 많았다.
나는 죽고 싶을 때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운다. 노랫소리를 내며 마음속으로 엉엉 운다. 그렇게 삼십 분가량을 울부짖어놓고도 모자라 필요시 먹으라던 수면제를 모아둔 통을 주머니 속에 꼭 쥐고선 편의점으로 향했다. 유서조차 쓰지 않고선. 죽지 말라고 하늘이 말리기라도 하는 건지, 결제가 두세 번이나 막히고도 생수와 비타 500을 샀다.
편의점 의자에 앉아 준비를 다 마쳤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눈물이 났다. 받지 않았다. 아빠의 전화를 받으면 죽지 못할 것 같았다. 겨우 벗어날 수 있게 됐는데, 내가 어떤 마음으로 겨우 결정한 일인데.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울리는 전화를 보고만 있었다. 전화가 한참 울리다 끊어졌다. 아빠는 내가 곧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지,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미안했다.
마음을 먹었다. 가지고 있던 수면제를 입에 다 털어 넣고 생수를 반쯤 다 들이킨 후 마지막 보상으로 비타 500을 마셔주었다. 이왕이면 마지막 기억은 조금이나마 덜 슬픈 맛으로 가지고 죽으면 좋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기다려도 몸에 반응이 오지 않았다. 이상해서 검색창에 검색을 했다. 수면제 복용치와 죽음의 연관성에 대해.
내가 먹은 수면제는 고작 10알, 치사량은 그의 몇 배는 훨씬 넘어야 했다. 나 자신이 하찮고 우스웠다. 내가 대체 무슨 쇼를 한 건지, 허탈하고 괴로워 견딜 수 없었다. 길바닥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결국 초상 치르는 사람 마냥 길에서 주저앉아 울면서 차디 찬 땅바닥을 손바닥으로 치고 주먹으로 두드리며 미친년처럼 엉엉 울었다.
눈물로 범벅져 초점이 흐려진 눈앞에 사람의 두 발이 보였다. 괜찮냐고, 무슨 일이냐고, 일단 사람 사는 곳이니 진정해 보자고, 땅바닥이 차가우니 일어나 보자고. 처음 보는 사람 둘이 죽으려던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죽고 싶은데 죽지를 못한다고, 울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그는 사실 나도 그런 적이 많다고, 그런데 견디며 살아보면 좋은 날도 온다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라고, 아직 젊은 사람이 그런 마음먹지 말라며 나를 말렸다. 친한 동생이 얼마 전에 죽었는데 정말 마음 아프고 힘들었다고, 주변인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러는 거 아니라고. 가족들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미안했다.
나는 거짓말하지 못했다. 어디서 무얼 하고 왔는지,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거운 죄책감을 입 밖으로 털어놓아야 했다.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척 말했다. 죽지 못했다는 사실에 무너졌었다는 것을, 그 감정을, 모두 말해버리면 돌이키지 못할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줄 것 같았다. 그 말을 뱉는 순간 나도 한껏 삼켜버린 압정을 뱉는 것처럼 목 안이 온통 피범벅이 될 것 같았다.
수면제의 후유증은 강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몸이 아파와 눈물이 나오지 않는대도 울부짖는 듯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 상태가 하루하고도 반나절 이상은 갔다. 그 상태로도 일을 해야 했다. 지옥 같았다. 차라리 깔끔하게 제대로 죽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제 다시는 죽음 따위 생각하지 않겠다 마음먹었지만.
죽을 마음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덤덤한 척하면서도 숨어서 눈물을 삼킨 그 흔적들이 나를 다시 일으켰다. 무뚝뚝하고 툭하면 틱틱거리는 오빠가 누가보아도 운 얼굴로 내 방에 괜히 들어와 내 얼굴을 살피고 나가고, 엄마가 밤새 울어 눈이 퉁퉁 부어버리고, 엄마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아빠에게 온 전화가 바닥에 엎드려있던 내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내 선택을 후회한다. 나는 이제 내 미래를 그려나갈 거다. 내 미래가 딱히 궁금하지 않아도, 미래 따위 생각 안 날 만큼 힘들어도, 버티고 견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