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아이

사계절이 아닌, 백야와 극야를 보내는.

by 백일




반복된다는 표현이 우스울 정도로, 바람이 드나들다 닫힌 창문 안의 바람이 방 안의 공기 중으로 머물듯, 그 바람이라는 불행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을 즈음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남들의 사계절은 나의 사계절에 비해 빠른 것 같다고. 다들 행복도 불행도 제 시기에 찾아와 제 시기에 가는 것 같았다. 물론 세상에 힘든 사람은 많았다. 심각한 건강문제, 나보다 정신질환이 더한 사람들, 전쟁과 가난 등등. 넓게 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내가 나아지는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가 처한 상황과 처지가 달라질 수 있는가? 바꿀 수 있는가? 아니었다. 그렇게 애써 알지도 못할 다른 사람들을 연민하고 동정하며 전혀 괜찮지 않은 나의 고통을 외면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나의 병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는가? 나는 나를 똑바로 보지 않아 괜찮은 척하다 감정의 댐이 터져버려 무너진 적이 있었다. 엉망진창이었다.


저수지의 댐이 터지면 마을은 수장된다. 그 참사가 내 마음속에서 벌어졌었다. 열심히 쌓아왔던 두터운 벽은 와르르 무너져 잔해가 마음을 온통 긁어 상처를 냈고, 외면하느라 꾹꾹 눌러버려 나도 잊고 있던 곪아터진 감정들은 넘쳐흘러 뇌와 심장을 쓸어버렸다. 온 신경이 비명을 질렀다. 내 존재가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걸 쓸고 간 자리엔 텅 빈 내가 남아있었다. 공허했다. 우울한 나는 무기력에 빠졌다. 그 힘겨운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통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힘겨운 시간은 마치 전기 고문처럼 강도를 조절해 가며 정말로 딱 죽지만 않게끔 아주 고통스럽게 내 삶을 망가뜨려갔다. 뇌도 같이 망가진 것 같다. 멀쩡한 기억이 없다. 행복한 기억도 끔찍한 기억도 떠올리고 싶지 않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다 끔찍한 기억까지 선명해질까 봐. 그런데 트라우마는 여전히 생생하다. 몸이 기억하는 걸까. 아직도 큰 소리나 고함, 불화 상황, 조용한 상황에서 쏠리는 시선들, 과속 같은 상황이 펼쳐지면 나는 심장이 떨린다. 숨이 가빠질까 봐 불안하다.


스물셋이다. 공황장애 약을 포함해 정신과 약을 먹은 지가 벌써 3년쯤 되어간다. 초기부터 약을 먹은 것이 아니다. 발작이 오자 나는 드디어 병원을 갈 수 있었다. 몸에 공황 전조 증상이 왔었던 것은 훨씬 전이었다. 버텼다. 버티다 못해 상황이 나아지자 그제서야 병원에 가게 해달라 애원했었다. 부모님 중 한 분은 어린 내가 정신과 기록이 남는 사회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두고 보기 힘들다 하셨다. 무엇보다 나까지 약을 먹는 것은 볼 수 없다고 하셨다. 심정이 이해가 갔다. 노력해 보기로 했다.


정신병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점점 망가졌다. 망가지고 망가지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충동적이었던 난 실패했다. 삶의 기회를 얻었다. 그 당시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왜 나는 마지막 내 선택까지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느냐고, 너무 힘든 이 삶을 다시는 이어가고 싶지 않다고, 제발 다시는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제발 나 좀 내버려 두라고. 그렇게 혼자 가슴을 치고 차가운 땅바닥을 치며 울부짖었었다. 지금은 물론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처럼 잊을만하면 다른 계절이 찾아오는 사계절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남극의 계절을 사는 아이인 것이다. 남극은 아주 오래 밝은 백야와 아주 오래 어두운 극야가 존재한다고 한다. 나는 애석하게도 유년기 때의 기억이 잘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존재가 시작된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나는 밝은 백야를 맞았고 유년기까지 행복했다.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사진 속 나는 행복한 표정이다. 드문드문 조각난 유년기 시절 기억 속 나는 대체로 가족들과 함께 행복했다.


어쩌면 남들보다 조금 일찍, 어두운 극야가 찾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착하다, 어른스럽다, 너와는 말이 통한다, 모두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고 보니 모두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아주 길고 긴 극야를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중간에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 생긴 깊고 좁은 틈)에 빠져 심하게 다치고 아파 쉬어가야 했던 때도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남극의 극야는 너무도 춥고 혹독하고 바람 한 점에 살을 에는 듯 아팠다. 나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텼다.


그러나 나는 극야를 버티던 중 오로라를 보았다. 그 남극 속에서, 극야 속에서, 나의 추운 계절 속에서. 마치 사계절의 겨울을 버티던 사람들이 동백꽃을 보듯, 문자적인 의미로가 아니라 따듯해서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오로라가 감사히도 나에게 찾아와 주었다. 나는 오로라를 보며, 혹독한 극야 속에서 그 아픈 시간을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들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내 생의 극야가 너무 긴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많다. 이 극야를 버틸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도 불쑥불쑥 든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만 나를 공격한다.


그러나 나는 오로라를 보았다. 한 번 본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길고 어둡고 혹독한 극야를 계속 버티는 동안 또다시 오로라를 볼 수 있으리라 희망할 것이다. 그렇게 나의 밝은 백야를 기다릴 것이다. 그 백야는 아주 길고 밝을 것이다. 그때를 상상하면 저절로 눈물이 맺힌다. 행복해서. 나는, 남극의 아이이다. 나는 백야와 극야를 산다. 오로라를 보았고, 오로라를 볼 것이다. 나는 긴 극야를 보내며 버티고 있다. 그리고 아주 긴 백야를 볼 것이다. 반드시. 나는 그 긴 주기를 버틸 만큼 강해질 나를,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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