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는 도대체 언제까지일까.
나의 사춘기에게 라는 노래가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울리는 또는 울렸던 노래겠지. 나는 한때 이 노래의 전주만 들어도 울컥했고 노래를 들으면 꺽꺽 대며 울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노래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아마 이 노래는 수없이 방황하고, 매일을 눈물로 적시고, 살고 싶지 않은 생각을 떨치려는 노력으로 아등바등 살아야만 했던 시기를 음악으로 승화한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느꼈고 동감했고 그 점에 감동받아 그렇게나 많은 눈물을 쏟아 내린 것이니까.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짙고 깊고 우울한 사춘기 같은 계절은 그나마 긴 인생에서 한순간 또는 짧게 몇 차례여야 하는 게 아니었던가.
이건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내 청춘은 온통 얼룩져있다. 가장 행복했던 때는 열여섯 그것도 초중반뿐이다. 나는 사춘기를(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수차례 아니, 길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겪고 있다. 그래, 솔직히 말하겠다. 죽고 싶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지겹도록 들었다. 너보다 힘든 사람도 많다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라고.
어쩌라고. 내가 힘든 건 내가 힘든 건데.
니가 내 인생 살아봤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 것이 아니다. 내가 스물셋씩이나 먹게끔 생존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내가 정이 많다거나 가족을 사랑해서라거나 덜 고통스러웠다거나 죽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다.
억울했다.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 꿈이 많은 아이였다. 그조차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때가 많았다. 다 지쳐서, 그저 영원히 잠들어버리고 싶은 때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가족들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나를 사랑하는 주변인들이 나를 붙들어주기 때문이고, 의사가 나를 정성껏 진료해 주며 진심으로 관심을 나타내어 멀쩡한 일상에 대한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나도 남들처럼. 나도 평범하게. 나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