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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우비 May 29. 2024

나의 인생이 10년 남았다면

[영화리뷰] 남은 인생 10년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러나 강렬한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가장 가져가는 건,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눈물 흘리고, 웃음 짓게 한다. 여러 사랑 이야기 중에서도 당연 이목을 끄는 건, 비극적인 사랑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와 같이. 이 영화 또한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온다. 새롭게 나타난 소재는 아니다. 다만, 그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이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10년이라는 세월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다. 어린아이에게는 한없이 멀게 느껴질 것이고, 청년에게는 금방 지나갈 것이며, 노인에게는 멈추었으면 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금방 지나갈 청년에게 10년의 수명이 주어진다면, 그 사람은 노인일까. 아니면 청년일까.


  영화는 희귀병에 걸린 ⌈타카바야시 마츠리(고마츠 나나 扮)⌋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반의 마츠리는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지만, 20대의 쾌활함으로 죽음의 공포를 누르고 있어, 큰 병에 걸려도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퇴원하고 집으로 가는 길, "스카이트리에 가고 싶어." 이 대사가 초반 마츠리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어딘가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오버랩할 수 있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온 마츠리가 동창회(원작 소설 : 반창회) 안내장을 받고, 참가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동창회가 열리는 가게의 앞. 입구에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그의 곁에 ⌈마나베 카즈토(사카구치 켄타로 扮)⌋가 말을 걸며 다가온다. 동창회는 한참 진행되고, 이전에 넣어둔 타임캡슐을 받는다. 모두가 즐거워하지만, 두 사람만은 그러하지 못한다. 마츠리는 이미 결정된 미래에, 카즈토는 갇혀버린 과거에 사는 이들이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둘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가까워진다. 그리고 서로를 구원하기에 이른다.

  영화 초반, 마츠리는 "연애는 안 할 거야." 라며 선언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마츠리가 함으로 누구나 할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수명이 제한된 자신에게 사랑은 과분한 것이라는 선언. 그 선언을 바꾼 게 카즈토와의 시간이다. 자신을 지우고, 상처 입을 타인을 위해 버렸던 것이. 타인에 의해 돌아왔고, 마츠리의 미련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마츠리가 삶삶을 갈구하게 되는 원천이 된다. 

  카즈토도 나아가기를 두려워 멈추었던 발을 마츠리와의 만남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것이 아닌, 작은 것부터 해도 괜찮다는 깨달음은 그를 성장으로 이끌었다.


  점점 활기를 찾아가는 카즈토와 점점 생기가 사라져 가는 마츠리. 영화 초반과 비교해 보면 누가 봐도 환자라는 것이 티가 날 정도로. 병이 나을 것이라 기대하는 카즈토와 이별을 준비하는 마츠리의 상황은 대비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의 유추와 상황에의 비극성을 높여온다. 청혼을 준비하는 카즈토와 이별을 준비하는 마츠리. 우리는 누구에게 눈물을 지어야 할까.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기에 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백미는 죽음을 대수롭게 받아들이던 마츠리가 "살고 싶다."며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소소한 바람들을 하나씩 이야기하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태연한 척했지만, 끝내는 한 명의 사람이었음을. 강인한 속에 품고 있던 연약함이 터져 나오는 장면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전이었으면 주저앉았을 카즈토가 계속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마츠리의 흔적이 그에게 남아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카즈토는 마츠리에게 삶의 소중함과 사랑을 돌려주었고, 마츠리는 카즈토에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새드 엔딩으로 가는 길목에서 둘은 서로를 구원했다고 느껴졌다. 마지막에 마츠리가 눈을 감기 전, 카즈토를 만난 것은. 마츠리의 이름인 재스민의 꽃말처럼 가엾은 삶을 버텨낸 그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작중 스카이트리가 '작년에 개장했다.'는 것으로 2013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영화에 드러난 마지막 연도는 2019년. 카즈토와 마츠리가 함께 한 시간은 대략 6년으로 추론할 수 있다. 10년이 아니라 6년.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 두 사람을 바꾸고 성장시켰다. 영화는 마츠리의 인생으로 우리에게 물어온다. 10년의 시간 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대들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이 질문을 등장인물의 인생을 통해 물어온다는 점에서 볼 가치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ps.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두 배우가 감정선을,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표현한다. 울지 않는 사람도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그 연기력 때문이라도 이후 다시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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