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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Aug 22. 2021

마당에 사는 호랑이

- 풀에서배우는 인문학

프롤로그 


시골에서 사는 건 나의 오랜 꿈이었다. 회사에서 종일 시달리다 퇴근할 무렵이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시골에서 조용하게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멋진 전원주택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소음이 들리지 않았으면 했고 잠깐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곳에 나무들이 있었으면 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시골로 내려갈 자신은 없었으니 그쯤에서 타협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나는 시골로 갔다. 집 앞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어 멀리 걸어 나가지 않아도 나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과 직장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는, 직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내겐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조용하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책을 읽으며 지낼 수 있으리라는 내 환상은 이사 간 지 일주일 만에 완전히 무너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풀'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풀은 호랑이"라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몸으로 체험한 나는 그때부터 풀을 호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호랑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시골살이 석 달 째로 접어든 지금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마당을 돌며 풀을 뽑는다. 화단에 돋아나는 풀을 뽑고, 소나무 주변 풀들을 정리하고, 심어놓은 꽃들의 상태와 배수로를 살핀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 풀을 뽑고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다. 덕분에 나의 아침은 예전보다 더 바빠졌다. 아파트에서 생활할 때는 아침시간이 온전히 나의 시간이었으나 지금은 마당에 할애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화장하고 옷을 챙겨 입는 시간은 그야말로 자투리 시간이다. 


시골살이를 선택한 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그동안 내가 책을 통해 배우거나 살아오며 배운 것들, 아니 그 이상의 깨달음들을 바로 코 앞에 있는 마당에서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얘기하면 풀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 깨달음들이 너무 아까워서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마다 달라지는 마당의 풍경과 그 풀들이 전하는 말들을 옮기는 것은 내 시골살이의 가장 첫 번째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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