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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Aug 22. 2021

1. 풀과의 전쟁

# 모두를 없앨 순 없어 # 시골살이의 행복 # 풀 때문에 망했어

시골에서 사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꿈꿔 온 나의 미래이자 희망이었다. 그러나 희망을 이룬 성취감과 행복은 고작 일주일 정도만 유지되었다. 어쩌면 그 일주일도 시골살이가 처음이었던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시골에 산다는 것을 단순히 여유나 낭만쯤으로 생각했으니까. 


6월에 시골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은 밖에 나가기 싫을 정도로 그 안에서 충만한 행복을 만끽했다. 특히나 비오는 시골은 운치도 있어서 나는 주로 테라스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흐르는 비와 만났고 세계를 누비다 찾아온 비의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전해 들었다. 갓 내린 커피향이 감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은 딱딱한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했고 갓 내린 커피향은 금방이라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갖게 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내 삶의 최상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뭔가가 심각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당에 나갈 때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달라지는 풍경, 몇 개 만들어 놓은 화단은 물론이고 마당 곳곳에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풀들, 게다가 비가 오고 나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무섭게 자라는 풀들은 시골살이를 갓 시작한 내게 대단히 큰 복병으로 다가왔다.  


왠지 이건 아니다 싶었다. 큰 결심을 한 듯 마당에 나가 풀을 뽑기 시작했다. 그런데 금방 뽑힐 줄 알았던 풀은 그늘진 곳이 아니면 뿌리까지 뽑히지도 않고 윗 부분만 잘렸다. 그렇게 일주일을 틈나는 대로 맨손으로 풀을 뽑았다. 그랬더니 어느날 부터는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시골에 사는 할머니들이 관절염에 걸리는 것은 이래서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시작한 시골살이인데, 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마당의 풀들은 없어야 했다.  


며칠 후부터는 방법을 달리했다. 호미를 구입했다. 답답해서 장갑까지 끼진 못했지만 뜻밖에도 그 작은 호미 하나를 사용하니 일이 훨씬 수월했다. 우리나라 호미가 그렇게 대단한 농기구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끝이 뾰족하니 풀 하나를 콕 찍어 뽑아내기도 수월할 뿐더러 넓게 퍼져있는  풀들은 호미 등으로 쓱쓱 긁어낼 수도 있어 아주 유용했다. 어떤 풀은 손으로 뽑았는데 이파리만 뽑히길래 뿌리까지 캐야겠다 싶어 아예 작정하고 뽑았다. 호미를 지지대 삼아 뿌리를 들어올렸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뿌리가 어른  손가락 세개를 합친 정도의 굵기에다가 길이가 30센티 정도 되는 것이 아닌가. 여리게만 보였던 풀에게 그렇게 깊고 튼튼한 뿌리가 있을 줄이야. 겉만 보고 알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풀에게 해야 하는 말인듯 싶었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풀뽑기는 지속되었다. 출근시간 9시지만 퇴근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일상이라 풀을 뽑는 시간은 주로 아침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5시반에 시작해서 7시 반정도까지 두시간 정도를 풀뽑기에 할애했다. 풀뽑기가 끝나면 서둘러 들어와 씻고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고되게 풀을 뽑아도 그 다음날이면 여전히 풀들이 자라 있었다. 특히 비가 온 다음날이면 풀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쑤욱 자라 있어 풀 뽑으러 나선 나를 기함하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에 왠 풀들이 그리 많이 숨어 있는 건지, 내가 풀뽑기를 멈추면 당장이라도 풀들이 온 집을 뒤덮을 기세였다. 


평소에도 습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습관 들이는 것을 무엇보다 신중하게 여기는 나로서는 풀 뽑는 일도 하나의 습관으로 만들어야만  시골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니 내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꼈다. 그러니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쟁을 습관으로 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시골살이였다. 


나의 시골살이는 풀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그렇게 시작되었다. 조금 더 정확히 얘기하면 풀로 가장한 호랑이와의 전쟁이었다. 비만 오면 마치 피냄새를 맡은 호랑이처럼 살아 날뛰는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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