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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Aug 25. 2021

2. 맥문동과 풀

#죽어도 죽어도 다시 살아나 #바보 도 트는 소리

원래는 풀들의 세상이었고 내가 침입자라 하더라도 이제는 나도 살아야 하니 휴전을 하고 타협점을 찾을 때까지 우리는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 매일 풀을 뽑기 시작하면서부터 마당의 풀들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풀뽑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이튿날이면 새로운 풀들이 땅 위로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허리가 너무 아파서 파스를 붙여야 했지만 한번 들인 습관이 깨질까 호미를 지팡이 삼아 풀을 뽑았다. 뽑히는 풀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날인가 부터는 몇 걸음을 걸을 때까지도 풀을 발견하지 못하는 날도 생겼다. 


살아가는 것이 생존경쟁이라는 것을 사람이나 동물뿐 아니라 풀들도 잘 안다. 그 생존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풀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을 달리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목적은 후세를 남기기 위한 종족보존의 방식이다. 자신이 살아남아야 후세를 남길 수 있기에 어떤 식물은 향기로, 어떤 식물은 색으로, 어떤 식물은 튼튼한 뿌리로, 어떤 식물은 흔들림으로 각자 살아남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게 본다면 매일 아침 두시간씩 매의 눈을 하고 전쟁을 치르는 나의 눈을 피해 맥문동 옆에서 살아남은 풀은 어찌보면 참 요령이 많은 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집 벽쪽으로 몇 그루 심어놓은 자작나무 아래 맥문동을 심었다. 포트에서 키운 맥문동을 사다가 덩이뿌리째 심었는데 어느새 짙은 초록의 잎들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맥문동은 한약재로도 쓰이지만 화초로만 보더라도 다른 꽃에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보라색 꽃을 피우고 풍성해지면 그 자태가 무척 우아하고 아름답다. 무엇보다 실수로 밟아도 잘 죽지 않고 강한 생명력을 지닌다. 그래서 나는 맥문동이 좋다. 

문제는 그 짙은 초록의 맥문동 사이를 비집고 풀이 자란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맥문동과 풀을 구별하지 못했던 나였기에 우리 집 마당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풀은 단연코 맥문동 옆에서 자라는 풀이었다. 그만큼 맥문동과 풀을 구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맥문동과 풀을 구별하기 시작한 것은 풀이 자라는 속도 때문이었다. 맥문동을 보다가 '신기하게도 쑥 컸네'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옆에는 어김없이 풀이 자라고 있다. 이왕 맥문동 옆에 숨어서 버티려거든 뽑히지 않을 만큼 튼실하고 깊게 뿌리를 내린 후에 자랄 것이지, 뿌리도 깊게 내리기 전에 눈에 띄게 쑥 자랐으니 당연히 뽑힐 수밖에....


만일 맥문동 옆에 숨어서 자란다 하더라도 그 풀이 알고 보니 귀한 난초였다면 그 난초만을 위한 새로운 화분이라도 만들어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는 맥문동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치 자신이 맥문동이 된 듯이 행세를 하다가 제 잘난 맛에 위로 쑥 자란다면 그때는 곧바로 뽑히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도 그와 같다. 모든 사람들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튼실한 뿌리를 내릴 때까지 조용히 힘을 기를 일이다. 나만의 특별함을 찾아내고 스스로 빛을 발할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갖고 나의 특별함으로 새로운 자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주변에 뛰어난 인물들과 어울려 다니며 스스로도 그런 인물인양 착각하며 으스대다가는 맥문동 옆에서 쑥 자라 눈에 띄는 풀처럼 자신도 모르게 뽑히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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