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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95. 벽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습니다. 그 벽은 높거나 낮을 수도 있고 벽의 높이만큼 친밀감을 느끼거나 거리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낯선 두 사람이 만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친구가 되었다고 해도 때로 사소한 서운함이나 오해가 생기면 벽의 높이는 조금 더 높아집니다. 다시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 따위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해도 어느 순간 지향점이 같고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을 만나면 그 벽은 생각보다 쉽게 허물어지기도 합니다.      

우울증이나 은둔형 외톨이처럼 스스로 세상을 향해 벽을 쌓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무리 밖에서 그들을 향해 손짓한다 해도 벽이 가로막고 있는 이상 그 안으로 들어가 손을 잡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깊숙이 파고들어갈수록 고독한 인간의 실체와 만나게 되고 그 실체의 무게로 인해 세상을 향해서는 더 높은 벽을 쌓기도 하니까요.     

199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멕시코의 세 얼굴>이라는 책에서 고독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엄마의 태중에서 견고한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인간은 타의의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혼자가 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고 그런 태생을 가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고독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견고한 탯줄로 이어졌던 그때를 그리워하며 타인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음을 느낄 때 인간은 절망하게 된다는 것이 고독에 관한 그의 견해입니다.     

고독한 인간이 함께 할 수 있는 타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게 되면 우리는 누구에게 질세라 벽을 쌓을 준비부터 합니다. 상처받기 두려워하는 내면의 고독한 그림자가 나보다 먼저 벽을 쌓을 벽돌을 집어 드는 것이지요.     

때로 내 곁에 있는 사람과의 사이에 벽이 쌓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일 수도 있고 친구나 직장 동료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건 처음 몇 장의 벽돌은 쉽게 무너뜨릴 수 있지만 막상 벽돌이 쌓여 견고한 벽이 되고 그 사이에 시멘트까지 발라버린다면 그때는 정말 무너뜨리기 힘든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한 장 한 장 쌓이는 벽돌로 인해 처음에는 그 사람의 발이 보이지 않게 되고, 다음에는 무릎이, 다음에는 허리가, 다음에는 가슴이, 그리고 마지막엔 그 사람의 얼굴까지 보이지 않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다시 서로가 벽을 마주한 채 고독한 모습으로 웅크리게 되겠지요.     

그러나 그 사람과의 사이에 단지 몇 장의 벽돌만 쌓여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 벽돌을 치워버리는 어떨까요. 그땐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대화와 이해를 통해 가볍게 무너뜨릴 수 있으니까요. 그 사람의 따뜻한 손이 보이지 않기 전에, 벽이 더 쌓여서 그 사람의 뛰는 심장이 사라지거나 그 사람의 해맑은 웃음을 잃어버리기 전에 우리 사이에 쌓인 담의 높이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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