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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94. 바닥

사람은 누구나 바닥을 딛고 살아갑니다. 걷기 위해서는 우선 발바닥을 바닥에 대고 일어서야 하고 한발씩 차례로 내 딛어야 합니다. 바닥을 딛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두 다리 모두 앞으로 내 딛을 수는 없습니다. 바닥, 그것은 삶의 시작이자 끝이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동반자입니다.     

내 삶이 바닥에 닿아 있어 도무지 움직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주변 환경이 갑자기 나빠져서일 수도 있고 심적으로 에너지를 잃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모든 것들이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만일 의도치 않게 삶이라는 녀석으로부터 크게 한 대 맞아 바닥에 쓰러진 것이라면 그 충격은 더 클 것입니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마음까지 피폐해져 여기가 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요.     

삶의 ‘바닥’은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청소년들도 바닥을 느낄 수 있고, 청년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살아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노년에는 더 자주 느끼게 될 테지요. 그러나 우리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것은 좌절감이나 아픔이 아니라 빨리 일어서서 걸어야 남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존경하는 노스승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삶이 바닥이라고 느낄 때는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그 자리에 그냥 누워 있어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바닥에 웅크리든 엎드리든 아무 생각 없이 한동안 누워 있다가 어느 정도 일어설 힘이 생기면 그때 몸 상태를 확인하면서 천천히 한쪽 무릎을 세우고, 다른 쪽 무릎을 세우고, 몸을 일으켜 세우라고요.     

만일 충분히 쉬었는데도 도저히 일어날 힘이 생기지 않으면 주변에서 내미는 손을 잡는 것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 손을 잡고 일어선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일어서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가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먼 훗날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사람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주면 된다고, 힘들 때 누군가의 손을 잡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삶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빨리 뛰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바닥을 딛고 살아간다는 것은 같습니다. 다만 내 삶이 언제나 바닥을 딛고 살아간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지요. 삶의 긴 여정을 여행하는 동안 힘이 다하면 그동안 우리가 언제나 딛고 있었던 바닥에 주저앉을 수도 있고 누워서 잠시 쉬어도 괜찮을 겁니다. 바닥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었으니까요.     

물고기는 바닥이라 생각될 때 꼬리로 힘차게 바닥을 내리치며 튀어 오르고, 새들은 하늘로 오르기 위해 두 다리로 바닥을 힘차게 밀어냅니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올곧게 서기 위해 바닥을 더 깊이 파고 내려갑니다. 바닥은 모든 생명의 시작이고 우리를 제대로 서 있게 만드는 근원입니다.     

지금 당신이 머무는 곳이 바닥이라 생각된다면 잠시 힘이 생길 때까지 쉬어보는 건 어떤가요. 나는 가까운 곳에서 당신이 조금 수월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따뜻한 손을 준비하겠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바닥에 쓰러진 나를 위해 따뜻한 손을 미리 준비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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