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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19. 불혹, 마음 돌아보기

살아가면서 좋아지는 것이 있다면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누군가가 이십대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해도 불분명하고 어지러웠던 그때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 현재의 연륜이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냈을 때, 아직 화를 내는 것까지 통제하긴 어렵지만,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화를 낸 이면을 조금이나마 떠올릴 수 있게 된 점도 그렇습니다.           

살면서 목소리 높일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버럭 언성을 높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 오랜만이긴 하지만 바로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막상 화를 내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내 마음 속 트라우마가 어느 순간 무엇인가에 의해 건드려졌기 때문이었고, 그것에 생각이 미치자 몹시 부끄러웠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수가 없네요. 나는 결국 내 감정을 못 이겨 상대방에게 화를 낸 셈이니까요.           

내 마음을 분석한 결과가 정답이든 아니든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다만 이런 분석들이 내 감정을 들여다보며 나를 조금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거든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나 자신을 아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왜 사소한 것에 눈물이 나는지, 내가 왜 어떤 사람을 유독 편애하는지, 내가 왜 타인의 어떤 행동을 보면 그리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는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어떤 현상들은 나를 왜 자꾸 견딜 수 없게 만드는지, 내가 왜 어떤 사람을 자꾸 헐뜯고 비난하게 되는지, 그 이면에 숨어있는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나 봅니다.           

아마도 내 몸에 깃들어 있는 습관들이나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몸짓들 역시 내 안의 묵은 감정들과 연관이 돼 있겠지요. 그런 감정들을 한 번도 깊이 있게 들여다본 적 없이 그저 세상의 모든 현상들을 다 안다는 자만심을 앞세워 눈으로만 보이는 현상들에 기뻐하고 괴로워하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고 있을까요.           

한때 당신을 다 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당신의 행동을 더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의 낡은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처럼 내 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조차도 잘 알지 못하면서 타인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요.           

내가 저녁 나절 어스름한 시간 속에서 호숫가 둔치에 내리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그리움의 깊이를 되새기듯이 오늘 당신의 마음 어딘가를 흐르고 있을 상처 입고 방치된 오래된 감정들도 잘 보듬고 이해하는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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