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내린 눈이 나무마다 하얀 눈꽃을 피웠습니다. 지난 가을에는 거리에 가득 떨어져 있는 노란 은행잎들이 절경이더니 어느새 세상이 흰색으로 덮여 또 다른 절경을 만들어 냅니다. 저 풍경 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고요합니다. 나뭇가지에서 날아오르는 작은 새의 몸짓마저도 고요를 흔드는 강력한 힘을 갖는 신세계의 아침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잠시만 머물다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젊음이 아름다운 것도 여행할 때의 풍경이 오랫동안 아름답게 기억에 남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만일 매일 그런 풍경을 봐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니라 어쩌면 지겨움이 되고 말 테니까요.
우리가 잠시 동안만 함께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유한(有限)한 것이 주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최대한 만끽할 권리가 있습니다. 설경이 주는 풍경도, 낙엽이 지는 풍경도,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의 젊음도 말입니다.
황진이가 읊었다던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라는 시조에는 이런 유한한 인생을 즐겨야 한다는 권유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자신을 유혹하려던 벽계수를 말에서 떨어뜨렸다는 일화로 유명한 시조이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일도창해면 다시 오기 어렵다’는 말에 유난히 마음이 머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계곡의 물은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릅니다. 바다는 어쩌면 그 물이 가 닿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일지도 모르지만 한번 바다에 이르고 나면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계곡을 흐르며 만났던 온갖 나무나 산새들, 다람쥐, 나비 등은 오로지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바다에 조금 더디 이르더라도 그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향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유한한 것들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빠르게 제거되고 있습니다. 흰 눈은 녹기도 전에 길이 미끄럽다는 이유로 재빠르게 제설작업을 하고, 낙엽이 떨어지면 거리가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로 곧바로 쓸어 담아 버립니다. 찬란한 젊음은 취업이라는 관문을 뚫기 위해 밤잠을 아껴가며 스펙만을 쌓는 이름뿐인 청춘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유한한 것은 때가 되면 사라집니다. 그 ‘때’가 인위적으로 앞당겨지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입니다. 눈이 쌓이고, 해가 비치고, 길이 질척해지고, 다시 마르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인생과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노란 낙엽들이 거리를 뒹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유한하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가는 우리네 삶을 느끼는 마음의 여유도 이제는 일부러 남이섬 등지를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자연을 보며 생각하는 힘을 제거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벽에는 눈이 펑펑 내리더니, 날이 밝자마자 쓸고 치우고 청소하는 사람들로 인해 풍경은 다시 어수선해졌습니다. 유한한 계절의 아름다운 이 아침이 못내 서운하고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