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지는 것이 서러워 무작정 발길을 옮기다보니 어느 샌가 경남 산청군에 있는 겁외사에 당도했습니다. 성철스님의 생가터에 지은 ‘겁외사’에는 생전 성철스님의 속세의 모습과 행적이 담겨 있었고 생전에 주셨던 말씀도 함께 기록돼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꽤나 부유한 집에 살았던 성철스님은 돈이 필요해지면 집 앞에서 아버지의 함자를 큰 소리로 불렀고 그것이 부끄러웠던 스님의 부모는 어르고 달래서 돈을 주었다는 일화를 읽다가 그만 엄숙했던 마음이 풀어져 잠시 실실 웃기도 했습니다.
성철스님 기념관을 돌아보다 문득 이런 글귀 앞에 멈춰섰습니다. “나에게 극악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선지식이요, 고통주고 모욕 주는 은혜는 목숨 다해도 갚을 수 없으리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고, 다른 물건도 아니니 이 뭣꼬”
생전에 많은 존경을 받았던 성철스님은 중생들에게 다양한 삶의 화두를 던진 분으로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이뭣꼬’는 지금도 책으로 나올 만큼 유명한 화두입니다. 마치 장자의 호접몽처럼 사물과의 경계가 없어진 어떤 순간을 말하는 것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헤아리기에는 마음의 수양이 한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스님이 주신 말의 의미를 헤아리기 위해 한동안 침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고통 주고 모욕 주는 것이 단순한 은혜도 아니고 목숨을 다해도 갚을 수 없는 것이라는 그 말은 참 심오한 뜻을 가졌음이 분명합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것이 나의 존재를 일깨우는 근원이니 그것들의 의미를 잘 헤아려보라는 스님의 따끔한 질책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이 우리 중생들의 답답한 생각을 전환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하고 고개를 끄덕여 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채 바쁘게 출근준비를 하면서 왜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바쁘게 살아야 하나 싶지만 스님 말대로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간절히 살고 싶어 하던 오늘을 살고 있고, 누군가가 간절히 갖고 싶어 하던 직장을 갖고 있는 것이니까요.
매일 집에서 듣는 아내나 남편, 부모의 잔소리가 지겨워지고 벗어나고 싶어질 때가 많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건 누군가가 간절히 갖고 싶어 하는 가족이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업무에 시달리며 내가 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하나 회의가 밀려올 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건 내가 아직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의미하지요.
비가 와서 우산까지 챙겨야 해서 번거롭고 오늘 일정이 질척질척 하겠구나 생각하다가도 돌이켜 생각하면 비가 와서 미세먼지도 사라지고, 잠시 비 오는 창가에 앉아 그리움에 젖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귀찮다고 생각했던 비에게도 잠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우리의 하루는 참 감사할 일들이 많습니다. 나를 질책하던 상사의 모진 독언도 성철스님의 말대로 오늘은 잠시 생각을 바꿔서 목숨을 다해도 갚을 수 없는 은혜라고 생각한다면 오늘 축 쳐진 내 어깨가 조금은 더 가벼워질 수 있겠지요? 술 한 잔 마시고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마음도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사무실에 꽂는 것으로 감사하며 스르르 풀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