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프랑스어 ‘roman·로망’에서 나온 말로 ‘소설’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낭만’이라는 말은 소설을 보며 비현실적인 환상을 그려내듯이 사물을 감성적이고 정서적으로 파악하려는 심리상태나 감미로운 분위기를 얘기할 때 쓰이지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나 추억을 의미할 때도 ‘낭만’이라는 말을 씁니다.
어떤 대중가수는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에 궂은비 내리던 밤 옛날다방에서 마시던 도라지 위스키와 마담과의 실없는 농담, 색소폰에 대한 감성을 담아 많은 중년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지만 이런 낭만이 현실 속에서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을 이성적으로만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진 사람들,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늘 남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해질 때, 거울 속의 내 모습에서 늙었다는 것이 실감날 때, 아무리 눈을 감고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막막할 때,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일 때, 내게 다가와 낭만적인 말 한마디 건네줄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낭만적이라 하면 현실성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쉬운 요즘이지만 쏟아지는 비가 보고 싶어 무작정 버스를 타고 비가 오는 지방으로 달려가고, 눈이 보고 싶다며 눈이 오는 지역을 찾아 떠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길가에 있는 풀꽃을 꺾어 무심한 듯 건네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던 풀꽃은 어느새 세상에서 하나 뿐인 근사한 꽃다발이 되어 새롭게 탄생하곤 했습니다. 낭만은 그렇게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지요.
우리는 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생계도 걱정해야 하고, 닥친 일도 해결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몇 십 년 후에 닥칠 노후까지 염려하느라 다른 곳에 눈을 돌릴 마음의 여유는 잊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바쁘게 살아갈 것을 종용하고 어느새 우리의 마음에서 낭만이라는 두 글자를 앗아가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쏟아지는 비를 보아도 아무런 느낌을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습기 찬 날씨가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제 우리는 흰 눈을 보아도 더 이상 그것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오히려 운전하거나 걸을 때 미끄럽겠다는 생각, 도로가 지저분해지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쯤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꽃이 아름답기는 하나 선뜻 돈을 주고 사서 타인에게 안겨주기도 망설여집니다. 꽃은 언젠가는 시들어버릴 테니 돈 낭비라는 생각 때문에 꽃을 살 때의 행복이나 건네받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퍼질 함박웃음, 그 사람이 매일 물을 갈아주며 꽃향기를 맡을 때의 소중함은 어느새 현실 밖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별을 보기 위해 떠나거나 촛불을 켜 놓고 밤새 대화하는 일은 어느새 유치한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살아가면서 오래 추억할 일들은 밤을 새서 일을 하던 순간이 아니라 바로 그런 낭만적인 순간들임에도 말입니다. 문득 풀꽃을 꺾어 건네주던 낭만적인 친구가 그리워지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