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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114. 들리지 않는 소리

도심에서는 여간해서 들을 수 없었던 소리가 시골에서는 문만 열어 두어도 잘 들립니다. 조용한 밤공기를 두드리는 풀벌레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참 정겹습니다. 교교한 적막에 무늬를 찍어내는 그 소리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간격을 두며 귓전을 울립니다. 이런 소리들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세상을 향해 걸어둔 마음의 빗장이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낍니다.  

   

도심에서는 여간해서 개구리나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개구리나 풀벌레가 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어딘가에서 몸을 낮추고 자신만의 소리를 내고 있을지 모를 그 작은 소리들을 도심의 높고 강한 소리들이 모두 차단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골로 이사를 한 후 가장 좋은 것은 밤마다 이런 작은 소리들에 마음을 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란다 문을 열어두고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 소리들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각자의 소리들은 저마다 높낮이도 다르고 형태도 다릅니다. 그들마다 하고 싶은 얘기들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시골이라도 이런 소리들을 듣고 싶을 때마다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소리들은 사람의 말이 잦아들고 인위적인 금속성의 소리들이 모두 자취를 감춘 뒤라야 비로소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니까요.     

세상에는 우리가 듣지 못하고 지나치는 소리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들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방이 고요해지고 분주함이 잦아들면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한밤중에 불을 끄면 시계초침이나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고요해 져야만 비로소 들리는 소리, 당신이 내게 전하는 마음의 소리도 어쩌면 내 마음이 고요해 져야만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직접 느끼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그 소리들을 없다고 치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리들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것일까요.   

  

나뭇잎이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 소리, 나비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소리, 움츠렸던 꽃봉오리가 햇빛에 와르르 열리는 소리, 나무가 땅속에서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 잠자리 날개 부딪는 소리, 햇볕에 널어놓은 빨래에서 물기가 마르는 소리, 바람이 뺨을 스치는 소리, 그 많은 소리들을 우리는 듣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나는 총소리, 상처와 고통으로 흐느끼는 소리, 엄마의 마른 젖을 빠는 아프리카 갓난아기의 힘없는 울음소리…, 어쩌면 우리는 그 많은 소리들을 듣지 않기 위해 더 분주한 척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내 주변이 고요해져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 귀가 아닌 마음을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소리, 그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가 유한한 생을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할 또 하나의 참된 능력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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