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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67. 내 인생의 파란불

스물다섯 살에 운전을 시작한 이후 10여 년 동안은 운전이 적성에 딱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전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 그 자체였고 내 의지대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최초의 물건이었으니까요.


운전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자 한동안은 꽤나 속도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시속 180킬로는 우습게 넘기며 수원에서 평택까지 운행시간을 단축하는 것을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무모했던 운전이 방어운전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은 첫 번째 사고가 난 이후였습니다. 운전은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언제든 상대방에 의해 다칠 수도 있으니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속도도 지켜야 하고 다른 차들과의 흐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무리하게 추월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져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합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운전을 하다보면 이렇게 차를 타고 달리는 것이 내 인생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다 만나게 되는 신호등은 때로 마음을 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릴 수는 없으니까요.


길이 아무리 곧게 뻗어있다고 해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합니다. 배경도 없고,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인생이 장애물까지 만났구나 생각하면 삶은 왜 그리 초라하기만 하던지…. 그럴 때마다 신호등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거침없이 빠르게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던 때는 빨리 가는 것만이 최선인 줄 알았고 남보다 빨리 달리면 때로 우쭐해지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당시는 차마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요즘은 운전을 하고 가다 때 맞춰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의 파란 불”이라고 외치며 혼자 기분 좋게 웃곤 합니다. 그러나 그 파란불 역시 영원하지는 않겠지요. 어느 순간 빨간 불이 내 앞을 가로막으면 난 반드시 속도를 늦추고 그 자리에 멈춰서야 할 테니까요. 그러나 그 빨간불도 결코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나는 언젠가 들어오게 될 파란불을 생각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인생이 최종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앞으로도 수많은 신호등을 만나야 하겠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슬기롭게 주변을 돌아보고, 타인과 호흡을 맞춰가며 ‘서다, 가다’를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빨간불이라고 너무 실망할 것도, 파란불이라고 너무 좋아할 것도 없을 겁니다. 그것은 그저 최종 목적지를 향해 순리대로 가야 하는 우리 삶의 과정일 뿐이니까요.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주위를 돌아보며 호흡을 맞춰 순리대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 빨간불에 걸려 잠시 멈춰 섰을 때도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파란불로 바뀐다는 것, 그것은 운전이 가르쳐 준 삶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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