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지난 일들을 잊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힘들었던 기억들,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던 기억들, 부끄러운 기억들, 그 모든 것들을 잊고 현재의 내 모습만이 오롯이 ‘나’인 것처럼 드러나 보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그보다는 조금 나은 모습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으니까요.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학은 꿈도 꾸지 못했고 24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초라한 20대가 나의 모습이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꿈의 20대가 내게는 우울하고 힘들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일하고 아이 키우고 살림하면서 힘들게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도 지난 일에 대해서는 대부분 입을 닫고 살아왔습니다. 부끄럽고 힘든 시간들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그런 과거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들은 공부를 거듭하고 역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동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건 현재의 내 모습은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이나 힘든 모습들까지도 모두 견딘 후라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제야 지난 시절의 나와 화해가 되더군요. 어려움을 견딘 시절들은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내 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타인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그 시절이 있어 가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다양한 모습들이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이지요.
역사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난 시간들을 부정한다고 해도 끝까지 내 안에 남아있는 것, 현재를 있게 하는 원동력 같은 것, 부끄러운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 현재를 만드는 어떤 거부할 수 없는 존재 같은 것 말입니다. 현재의 모습만 보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사람들의 행동도 그 사람의 지난 역사를 들어보면 이해되는 면이 많아지는 것 역시 그런 이유겠지요.
오래 전 역사에 관련된 책을 읽다가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쓰여 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역사를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면 삼국시대의 역사가 승리자였던 신라의 관점에서 쓰인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드러난 역사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게 되었지요.
역사는 현재를 만드는 근원입니다. 현재를 잘 살아야 하는 이유도 지금의 현재가 미래의 내 모습을 결정짓는 순간이기 때문이지요. 과거는 부정한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승자의 관점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사실들을 제시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다양한 것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세계를 이끌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하나의 획일화된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역사를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미래를 준비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의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의 역사와 화해하게 된 후에야 갖게 된 경험이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