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아무도 없이 오롯이 풍경과 나만 존재하는 것, 적막한 고요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 이외의 것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는 하루 중 얼마나 갖고 있을까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니 어쩌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가족이나 회사 동료들과 종일 함께 지내야하고, 업무가 끝난 다음에도 때론 업무의 연장으로, 때론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고, 주말에도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얼마 전,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매일 같은 일상 속에서 분주하게 지내다보니 하루는 어느새 습관처럼 변해버렸고 그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는 순간이 기어이 오고야 만 것이지요. 그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내 일상은 참을 수 없이 비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결국 어떤 계획도 없이 모든 일상을 떨치고 훌쩍 먼 동해바다 근처 시골동네로 숨어들고야 말았지요.
책 몇 권과 옷 몇 벌이 전부였던 나의 여행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자마자 아무런 생각 없이 늦은 새벽까지 잠자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자다 일어나 잠시 어두운 바다를 쓰다듬는 파도소리를 들었고 멀뚱멀뚱 책을 읽다 다시 잠을 자고 음악을 듣는 일들이 지속됐습니다.
그러자 사흘째 되는 날부터 드디어 굳어있던 내 머리가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엔 나에 대해, 그리고 너에 대해, 그 이후에는 너와 내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바람이 부는 늦은 시간, 바다로 나간 배들을 향해 애타게 울부짖는 등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먼 바다 한가운데에서 이 밤을 함께 보내고 있을 누군가의 울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편한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아랫동네 수산물시장에 나가 횟감을 뜨면서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다시 숙소로 올라오는 길에서는 텃밭을 가꾸는 어느 맘씨 좋은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어 싱싱한 상추를 얻기도 했습니다. 낯선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 숨 쉬고 있는 모든 것들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는 일상에서는 도저히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었지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비로소 다시 찾게 된 ‘나’는 그렇게 조금은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분주함에서 벗어나 오롯이 혼자일 때 세상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타성에 젖어있는 정신을 깨어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혼자만의 여행 이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차를 마시는 일도, 영화를 보는 일도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는 사람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의미를 찾지 못해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에게 오늘 먼 곳으로 훌쩍 떠나 오롯이 혼자가 되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분주히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풍경과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혼자가 된 나를 느껴보는 것은 나와 당신, 그리고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지름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