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은 정말 길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출가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며칠 쉰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감기에 몸살까지 겹쳐 연휴기간 내내 자리에 누워 지냈기 때문입니다.
연휴에 몸이 아픈 것은 참 오래된 습관인데 평상시에 씩씩한 모습만 보던 사람들은 연휴기간에만 아픈 나를 두고 일복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이번 연휴에도 아프다는 핑계로 종일 침대에 누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일들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머릿속에서 떠올린 옛 추억들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어서 슬펐습니다.
첫사랑도, 첫 키스도, 세상의 모든 ‘첫’들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아름답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편도여행을 떠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뒤돌아설 수 없기에 아련하게 기억되는 뒷모습은 추억하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내가 매 순간 겪는 시간들 역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이고 나는 언젠가 내게 다가올 마지막 종착역에서 오늘 이 시간을 숨 막히게 그리워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의 삶이 슬픈 것도 어쩌면 매 순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책 <슬픈 열대>에서 “여행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황야를 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 속의 황야를 탐색하는 것이로구나” 라고 말합니다.
나도 그의 말처럼 눈을 감고 내 마음 속의 황야를 따라 더 깊이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마음속 여행은 하면 할수록 점점 모르는 게 많고 때론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막막해질 때도 많습니다. 다른 생을 살아볼 수 없어 낯선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일상의 반복과 제약으로 인해 떠나지 못할 때는 눈을 감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합니다.
사람과 사람, 이방인과 이방인들이 모인 곳에서 편도여행을 떠나는 여행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새 외로움에도 익숙해져 있나 봅니다. 천여 개의 전화번호를 뒤져도 마땅히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사람이 없는 늦은 밤에는 나처럼 밤을 여행 중인 누군가가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며 페이스북에 적은 글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글에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기도 합니다. 아마도 상대방은 내가 ‘좋아요’를 눌러주는 순간 마음의 위로를 받고 조용히 미소를 짓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유난히 커다란 달이 떴습니다. 집 창문으로 달을 바라보며 이 달은 누군가의 소원으로 인해 더욱 커지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오늘처럼 각자 외로운 시간을 견디다 생을 마감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 시간 어두운 하늘에 덜렁 걸려있는 유난히 커다란 달을 향해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아직 사람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달을 향해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이 가을을 지나는 내 외로움의 깊이가 깊어지고 나의 글이 조금 더 깊어져서 당신의 외로운 마음 한 언저리에 조용히 가 닿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