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머니가 내게 하신 말 중 가장 생각나는 말이 “대체 언제 철들래?”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에 장난삼아 “철이 들면 몸이 무거워져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하며 맞장구쳤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철’을 ‘쇠’를 가리키는 ‘철’로 해석한 것이었지요.
‘철들다’라는 말은 ‘철’과 ‘들다’의 합성어로 사전적 의미는 ‘사리를 분별해 판단하는 힘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철’은 ‘봄철’ ‘겨울철’ 등 계절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고 ‘들다’라는 말은 ‘무르익다’ 또는 ‘들어서다’라는 뜻이니 ‘철들다’라는 말은 ‘계절의 변화를 알아챌 만큼 무르익었다’거나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는 시기에 들어섰다’는 뜻이 됩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자연현상의 변화 원리를 이해할 만큼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졌다는 말이 되겠지요.
농부처럼 자연의 변화를 잘 알아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24절기에 맞춰 농사짓는 때가 있고 그 때를 놓치면 1년 농사가 헛되는 법이니까요. 봄이 시작하는 입춘이면 객토를 하고, 봄비가 내리는 우수에는 거름을 준비하고, 보리가 익어가는 소만에는 모내기를 시작하고,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에는 김장 무와 배추씨를 뿌리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처서가 되면 고추를 따고, 된 서리가 내리는 상강에는 들깨를 털거나 겨울을 나기 위한 집 단장을 하는 것이 농부의 1년 생활이었습니다.
예부터 나이는 어려도 때를 잘 알아서 농사를 지으면 ‘철이 들었다’고 했고, 나이는 먹었지만 때를 모르고 농사철에 물고기나 잡으러 다니며 딴 짓을 하는 사람은 ‘철이 없다’고 손가락질 하곤 했습니다. 그러니 철이 든다는 것은 나이와는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의 생명에 관한 공부를 해야 하고, 땅의 성질이나 풀의 성질까지도 모두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은 ‘철’이 드는 일이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갖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전부터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작은 땅을 얻어 생전 처음으로 이것저것 모종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두어 평 남짓 한 공간이지만 상추도 심고, 치커리도 심고, 대파, 열무, 고추, 가지 등 채소는 물론이고 블루베리와 사과나무 세 그루도 심었습니다. 나무야 시간이 한참 가야 하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채소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여다보게 되고 요즘처럼 땅이 메마르면 마치 내 심장이 메마르는 느낌입니다.
오늘은 새끼손톱만 한 가지가 열렸고 열무 순이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처럼 내 마음은 환희에 차곤 합니다. 이런 마음을 당신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매일 아침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도, 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에 절대 공감하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경건함이나 먹을거리에 대한 소중함, 자연의 위대함을 조금씩 온몸으로 느낀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겸손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비로소 철이 들어가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