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08. 2022

5. 내 몸이 건네는 말 '통증'

어깨 통증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며칠 글을 쓰느라 무리해서인지 어깨와 목을 잇는 곳쯤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아픈 것을 알아달라고 보내는 몸의 신호를 그동안 애써 모른 척 하며 지내왔지만 통증으로 인해 잠시 바쁜 일과를 쉬면서 내 몸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걸 느끼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네요.          

어깨 통증이 깊어지면 자의반 타의반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내 몸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는 처량하기도 하지만 어떨 땐 꽤나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 전, 가까운 친구가 애인과 헤어지던 날, 내 손을 잡아 제 가슴께로 가지고 가더니 “여기가 너무 아파. 걔가 보고 싶은데, 여기가 너무 아파…” 하며 울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처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떠나가지 못한 기억들이 만들어낸 통증이겠지요. 나는 그저 가만가만 등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친구의 통증이 지금은 조금 무뎌졌을까요.          

어느 일요일 아침, 가까운 영화관으로 혼자 조조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영화비도 할인되어서 내심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동안 <레미제라블>을 무척 보고 싶었는데 영화를 보며 시간을 허비하기엔 그동안의 삶이 너무 빠듯했기 때문에 일요일 오전을 활용하기로 급하게 마음먹은 것이지요. 혼자 보는 영화가 좋은 건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어도 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니 가능하면 슬픈 영화를 보는 게 제격입니다.           

영화를 보는 사이 나는 이미 다 아는 뻔 한 장면에서 꼭 세 번을 울었습니다. 한번은 장발장이 신부님의 은식기를 훔치다 발각되어 경찰에게 잡혀왔을 때 신부님의 용서를 받는 장면이었고, 또 한 번은 코제트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에포닌이 자신이 좋아하던 마리우스가 자신보다 코제트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그를 대신해 총을 맞고 그 남자의 품에서 죽어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번은 장발장이 수도원에서 딸을 기다리며 죽어가는 장면이었지요. 나를 울렸던 그 장면들이 모두 가슴 저린 것이었지만 특히 사랑하던 사람을 대신해 총을 맞고 죽어가던 에포닌의 모습에서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북받쳐 오르면서 가슴에 아릿하게 통증이 오더군요. 마치 내가 그 여자라도 되듯이 말입니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통증은 꽤 오랜만이라서 나는 아껴가며 그 통증을 음미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갈수록 통증에 무뎌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햇볕이 너무 따사로울 때, 하늘에서 희디 흰 하얀 눈송이가 펑펑 쏟아져 내릴 때, 비가 올 때, 꽃이 필 때, 아기가 두 발로 세상을 딛고 아장아장 걸을 때, 계집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수다가 싱그러울 때, 꽃이 떨어질 때, 바람이 불 때, 새가 날고 모양을 만들지 못하는 구름이 흐를 때, 나이든 남자의 웃음이 아직 소년처럼 해맑을 때, 아직 떼를 입지 못한 햇무덤을 볼 때, 강보에 싸여 품에 안긴 갓 태어난 생명을 보는 일도 가끔은 우리들 마음을 아릿한 통증으로 물들이곤 하는데 말이지요. 어깨가 다시 아파옵니다. 잠시 글을 멈추고 내 마음이 전하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시간입니다. 

이전 29화 16. 대체 언제 철 들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