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던 강렬한 태양빛도 사그라지고 어느새 온 산에 울긋불긋 가을이 깊었습니다. 이제 곧 나무들은 저마다 하나씩 잎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모습으로 긴 겨울을 견뎌내겠지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렇게 때를 맞춰 돌아가는 자연 현상들을 보면 분명 이 천지에 어떤 신이 있어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싶다가도 또 어찌 보면 이 자연은 스스로 생生하고 멸滅하는 방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나무는 잎과 꽃을 자라게 하지만 결코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만일 나무가 잎과 꽃을 소유하려 했다면 나무에서 꽃이 활짝 피거나 열매를 맺는 일은 결코 없었겠지요. 소유하지 않고 스스로 활동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나무가 있어 잎은 초록으로 무성해지고, 꽃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때가 오면 나무는 스스로 잎과 꽃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아무리 진초록의 잎들이 무성하게 위용을 드러낸다 해도 때가 되면 나무는 미련 없이 내려놓고 홀로 겨울을 견뎌낼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게 쉬웠다면 이 세상에 종교라는 것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욕심을 비우고 내려놓는 일이 그토록 힘든 일이어서 스님은 참선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며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는 말씀을 되새기는 것이겠지요.
내려놓자 하면서도 막상 눈앞에서 보면 또 다시 욕심이 생기고 내려놓고 나면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 우리네 마음이고 보면 자연은 인간보다 현명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생지축지 생이불유 生之畜之 生而不有’라는 말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천지는 낳고 기를 뿐, 낳았다고 해서 결코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합니다. 천지가 모든 자연의 생명들을 낳고 비와 햇빛으로 그 생명들을 기른다고 해도 그것을 억지로 소유하지 않고 자연 속 생명들이 스스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이지요.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지만 때가 되면 자식을 품에서 놓아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소유하지 않고 세상 속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가능해지는 일입니다. 모든 자연은 때가 되면 스스로 내려놓는 준비를 하는데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지요.
힘이 들면 내려놓으면 될 일인데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욕심이고 집착입니다. 이로 인한 괴로움도 본인의 몫이고 고통도 본인의 몫이니 스스로 알아서 내려놓으면 될 일인데, 갖은 괴로움과 고통을 겪은 후에야 내려놓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어리석음 때문은 아닐지….
이 가을, 나뭇잎을 미련 없이 내려놓은 나무가 바람 속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봅니다. 꽃으로 화려했던 봄과, 잎으로 무성했던 여름을 뒤로하고 스스로 고독해지는 나무를 보면서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이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