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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223. 엄마라는 도서관

엄마 나이 여든, 내 나이 쉰…. 엄마는 지금도 나를 ‘아가’라고 부릅니다. 이제는 내가 안부를 물어야 하는데도 여전히 엄마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처지입니다.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매일 묻고 또 묻는 엄마를 보며 이제는 내가 딸에게 똑 같은 말을 묻고 또 묻습니다. 엄마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하는 나처럼, 딸도 여전히 그러겠지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엄마처럼 했던 질문을 반복하면서도 행여 건성으로 대답할라치면 흘려듣지 말고 잘 새겨들으라고 재차 확인까지 거듭합니다.     

이십대나 삼십대쯤, 바쁘다는 핑계로 친정엄마에게 전화도 안하고 소홀히 할 때면 십대 소녀였던 딸은 “나도 엄마 보고 배울 거야”라며 은근히 내게 압력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 협박이 무서워 바쁜 시간 쪼개 엄마에게 전화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나도 철이 들었는지 요즘은 먼저 엄마에게 전화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평생 과일 장사 하느라 집안일을 모두 어린 내게 맡겨놓았던 일이 지금도 가슴 아프다며 눈물 짓는 엄마를 위해, 요즘은 일요일 아침마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싶다며 찾아가서 식탁에 가만히 앉아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소소한 행복도 누립니다.     

밥을 먹고 난 뒤에는 엄마가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엄마가 힘들게 살아왔던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중에는 형편이 어려워 우리에게 잘 해주지 못했던 일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어김없이 눈물을 글썽입니다.     

부모의 삶은 누구보다 자식이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엄마에 대해 알았던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의 삶은 가난에 찌들어 자식들 먹여 살리는 것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엄마에게도 사랑이 있고, 우정이 있고, 여성으로서의 삶도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엄마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내 이야기를 글로 쓰면 책 수십 권은 나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이젠 잘 압니다. 부잣집 귀한 막내딸로 태어나 빨간 구두를 신고 다녔다는 이야기, 아홉 살 때 6.25전쟁이 나서 가족이 모두 몰살당하고 혼자만 살아남은 이야기, 남의 집 식모살이로 떠돌아다니며 성장했던 이야기, 약국에서 일하다 납치되어 결혼했다는 이야기, 친엄마에게 버림받은 전실 자식 셋과 자신이 낳은 자식 둘까지 모두 다섯 명의 자식을 끌어안고 팔자려니 생각하며 살았던 이야기 등등 엄마의 이야기는 매번 끝이 날 줄 모릅니다.     

엄마 나이 여든, 내 나이 쉰…, 이제 엄마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엄마의 이야기에 때론 한숨짓고 때론 맞장구치며 가슴 한켠에 기록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이제야 나의 역사가 선명하게 살아나는 느낌도 듭니다. 나의 어린 시절 환경이나 혹은 그 환경 속에서 자라는 동안 알게 모르게 내 안으로 스며들었던 것들, 그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형성되어 가던 과정들까지 말입니다.     

그러던 엄마가 며칠 전에는 허리가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엄마라는 거대한 도서관에서 아직 미처 못 꺼내 본 책이 많은데, 그 책들을 다 읽으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병원을 오가는 내 마음이 요즘은 자주 초조해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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