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학가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의 손, 한국인의 마음》이라는 에세이에서 ‘누워있는 악기, 거문고’에 대한 사유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은 모든 악기는 그 소리보다 그것을 연주할 때의 자세와 위치 속에 그 특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며 서양문화를 대표하는 악기들은 대체로 공격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선생이 예로 든 것은 바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입니다. 피아노는 벽처럼 연주자의 앞을 가로막고 있고 연주자는 그것이 본래 현악기인데도 타악기나 다름없이 건반을 두드려야 하는데 그것은 대결의 자세라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바이올린 역시 연주하는 몸짓만 관찰하다 보면 마치 허공으로 도망치려는 한 마리 새를 붙잡아 턱으로 짓누르고 또 한손으로는 톱질을 하듯이 털을 뽑아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말합니다. 서양악기 중에서 그나마 인간과 가장 친숙하게 보이는 것은 기타로 독주악기나 다른 반주악기로서도 융합적이고 연주될 때도 사람 품에 안기는 밀착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타 역시 우리나라의 거문고에 비하면 대결적인 공격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있지는 않다고 스스로 반론을 제기합니다. 기타가 서 있는 것을 끌어안은 자세라고 한다면 거문고는 아예 연주자 앞에 누워있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거문고는 사람의 무릎 위에, 땅바닥에 눕혀질 때 비로소 연주할 수 있으며 연주할 때도 어느 한구석 공격적인 자세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무릎 위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어루만져주는 어머니의 모습과도 같고, 때로는 누워있는 환자의 이마를 짚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흐르는 냇물 가에 앉아 때 묻은 것을 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그래서 거문고 타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인가를 편안하게 눕히고 잠재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연주가 끝난 후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보면서는 ‘누워서 살고, 일어나서 죽는 역설의 악기’라고 사유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무게를 느낄 때 인간은 비로소 눕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침묵’인 만큼 거문고의 소리는 침묵 속에서 울려오는 소리라고 끝을 맺습니다.
이어령 선생은 꼿꼿하게 서서 대결하거나, 혹은 억지로 상대방을 억압해서 내는 소리가 아닌 가장 낮은 모습으로 상대방과 함께 할 때라야 비로소 가장 깊은 울림의 소리, 편안한 소리로 화합할 수 있다는 것을 거문고를 통해 사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천천히 읽다보니 문득 오래 전 발표했던 졸시 한편이 떠오릅니다.
“직립의 꿈을 놓은 후에야/ 비로소 그대를 조금 알겠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그대 곁에 누워서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푸른 영원을 알겠다/ 내게 있는 모든 관절을 구부려/ 바닥까지 몸을 낮추고/ 순하게 두 귀를 눕혀 눈을 감은 뒤에야 비로소/ 빛나는 그대가 온다는 것은” - 詩 ‘눕다’ 부분
오래 전에 쓴 시이긴 하지만 지금 다시 이 시를 읽으며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스스로가 초심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깊은 울림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낮아질 수 있는 만큼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때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