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도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주위의 기부를 받아 ‘그냥 드림’이라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어려운 사람 누구나 편하게 와서 필요한 음식과 물품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부디 ‘그냥드림’의 취지대로 어려움을 겪는 이가 있다면 눈치 보지 않고 찾아와 도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봄에 시작된 코로나19가 어느새 해를 넘겨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파가 몰아치고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도 훨씬 많아졌습니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 갈 곳을 모르고 방황하는 가출 청소년, 여러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양부모 혹은 한부모 가정, 홀로 거주하는 장애인이나 노인 등에 대한 관심도 예전보다 줄어들지 않았을까 걱정이 됩니다.
문득, 언젠가 보았던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제목의 영화가 생각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너무 강렬해서 한편을 보는 내내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보았던 영화입니다. 저소득층이나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는 지원센터에서 형식과 절차만 반복하는 장면을 보며 몇 번이나 가슴을 쳐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니까요.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해 보조금 신청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 이주민에 대한 차별, 가난과 굶주림이 일상화된 영화 속 장면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낯선 땅에서 홀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여성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환경에 절망하지만 그런 그녀를 위로하는 것은 같은 처지의 병든 노인입니다. 노인 역시 지원이 끊기면서 아내와 함께 사용하던 물건까지 팔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들을 돕고, 위로하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줍니다.
생리대를 훔치다가 적발되기도 하고 결국 매춘에 이르는 여성의 삶에서는 복지제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밤 새워 열심히 일해도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여성은 자신들을 돕는 노인에게 기꺼이 한 끼를 내어주고는 빈민들을 위해 마련된 식료품점에서 극도의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허겁지겁 통조림을 먹다가 오열합니다.
모든 것들을 일률적으로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이 어떤 면에서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마다 살아온 삶이 다르고 처한 현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제 우리는 체감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롯이 개인의 탓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나 그저 도움만 바라는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일쑤입니다. 이때 노인이 말합니다. “사람은 자존심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라고 외친 이 말은 노인이 죽은 뒤에야 사람들에게 전해져 우리를 숙연케 합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내 주변의 이웃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존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