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집에는 ‘독구’라는 하얀 개가 살았습니다. ‘독구’는 개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Dog’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인데 우리 집에서 키우던 동물 중 개들은 모두 이름을 ‘독구’라고 불렀고 고양이는 무조건 ‘나비’라고 불렀습니다. 그 개가 몇 번째 ‘독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인가 그 독구는 밤새 십여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이른 아침마다 열 일 제치고 장사를 나가던 엄마는 독구가 새끼를 낳은 걸 발견하자마자 장사도 뒤로 한 채 얼른 부엌에 가서 북어를 넣은 미역국을 끓여 독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독구야, 새끼 낳느라고 정말 수고했다. 밤새 혼자서 힘들었지?’라며 등을 한참이나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사람 먹을 것도 귀하던 그때, 엄마는 동네 식당들을 돌며 음식 찌꺼기를 구해오셨고 그걸 솥에 넣어 푹 끓인 후 식혀서 개에게 먹이곤 했습니다. 그런 엄마가 개에게 손수 미역국을 끓여 주시는 건 제 눈에 참 특별하게 보였습니다. 아마도 한 생명을 품는다는 것, 그리고 생명을 낳는 것이 사람이나 짐승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겠지요.
초등학교 4학년 겨울로 기억됩니다. 한번은 밖에 나갔다 돌아오니 어떤 할아버지가 아랫목에서 둥근 밥상에 차려진 밥을 먹고 계셨고 그 옆에는 엄마가 앉아서 할아버지에게 숭늉을 권하고 있었습니다. 단칸방에서 생활하던 우리에게 아랫목은 참 귀한 자리였습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제일 먼저 아랫목에 펴둔 이불 속에 손을 넣어 온기를 채우곤 했으니까요. 그런 아랫목에 할아버지가 앉아 식사를 하고 계셨으니 내게는 그분이 아마도 우리 친척 할아버지인가보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는 내게 깍듯이 인사를 하라고 시키고는 시장에서 사온 내복을 입히고 돈까지 건네주며 할아버지를 공손히 배웅했습니다.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던 그 할아버지가 추운 겨울 거리를 떠돌다 우리 집 앞에서 잠든 걸인이었다는 건 나중에 안 사실이었습니다.
엄마는 단풍이 물 들면 곱게 물든 나뭇잎들을 잘 말려두었다가 창호지를 갈아야 하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그 나뭇잎들을 꺼내 하얀 창호지에 붙이곤 하셨습니다. 창호지 사이로 비치는 나뭇잎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련히 떠오릅니다. 종이를 접고 접어 가위로 작은 구멍을 내면 종이에는 구멍이 다양한 문양으로 변하게 되는데 엄마는 그것을 유리문에 붙이기도 하셨습니다. 그것은 방안에 이불을 덮고 누워 바라보면 마치 문으로 별이 스며든 것 같았습니다.
곱던 얼굴에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어 우리가 매일 ‘만년 소녀’라고 불렀던 엄마는 이제 어느새 일흔 중반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자식에게 기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엄마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함께 음식을 먹으러 가면 항상 밥을 먹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돈을 내고서야 밥을 먹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서 내가 병원비라도 낼라치면 엄마는 “내가 너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라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곤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음식을 많이 해서 동네방네 나눠먹는 걸 좋아하던 엄마, 그 마음이 어떤 것이었겠구나 하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은 나는 엄마가 먼저 걸었던 발자국을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