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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09. 2022

63.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해결을 촉구했던 인도의 석학 스피박은 페미니즘을 주창한 학자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한 페미니즘이 아니라 세상에 말하지 못하는 것들, 서구의 힘에 억눌린 식민지 사람들이나 권력에 억눌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위계층’을 뜻하는 ‘서발턴’이라는 개념 역시 그런 이야기 전개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를 들어 뉴욕의 증권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단 십여 분 만에도 큰  돈을 벌수도 있지만 인도나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은 몇 천 시간을 일해야 고작 뉴욕의 티셔츠 한 벌 값을 벌 수 있는 것, 그런 사회구조 속에서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때, 아프리카 농장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수확하는 일에 어린이가 고용된다는 사실을 두고 나름 의식 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학교가고, 공부하고, 부모에게 어리광부려야 할 어린이가 어른들이나 해야 하는 일에 동원돼 종일 일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농장에서 생산한 커피는 구매하지 말고, 대신 어린이를 고용하지 않는 농장에서 수확한 커피만 소비하자는 의식이 싹텄습니다. 그런 뜻으로 생겨난 이름이 바로 ‘착한커피’ 입니다. 그런 농장의 커피를 구매하는 사람이 없으면 자연히 아이들이 노동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피박은 자신의 이론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아이들은 그렇게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어지는데 농장주가 아이들을 고용하지 않으면 결국 아이들은 끼니를 해결하지도 못할 테니까요. 그럼에도 농장을 찾은 카메라는 아이들이 노동에 착취당하는 모습만 연신 보여줍니다. 정작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 배고픔에 고통 받는 현실은 외면한 채 말이지요. 아이들은 일하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노동에 끌어내는 사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주목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당장 아이들을 고용하지 말라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노동현장에 나가지 않고도 하루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하는 건 아닐까요.


세상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습관으로 물들어버린 우리의 눈은 내가 아는 한계에서만 그 현상을 받아들이기 마련이니까요. 아이들이 동원되지 않은 착한 커피를 마신다는, 나름 의식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어쩌면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현실을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과연 진실일까요. 어쩌면 누군가가 의도하고 덧씌워놓은 그대로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 이면에는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눈물이 감춰져 있는 건 아닐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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