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신체적으로 따진다면 고작 30센티도 채 안 되는데 그 거리가 세상에서 가장 멀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같은 몸뚱이 안에 있는 것인데도 머리와 가슴은 왜 그리 따로 노는지, 때론 생각하는 대로 마음이 움직여주지 않고 또 때론 마음이 가자는 대로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 힘들 때가 많습니다.
지식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머리’ 라면, ‘가슴’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느껴야 하는 감정들, 개인의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을 대하는 마음가짐, 타인을 대하거나 공감하는 능력 등을 말합니다. 그것은 아마 지식과 지혜라는 말로 풀어놓아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인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을 가장 짧게 만드는 일이고 머리와 가슴 모두를 활용해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지식은 단기간에도 터득할 수 있어도 지혜는 그리할 수 없으니 인문학은 짧은 시간 배운다고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차곡차곡 내면에 쌓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내일을 염려하게 만들어서 오늘보다는 내일 먹을 쌀을 걱정하게 만들고 조금의 여유도 없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아등바등 내일 쓸 돈을 위해 일하도록 만듭니다. 또 내일 병에 걸릴지 모르니 보험처럼 미리 대책을 만들어 내일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내일이라는 시간을 살기 위해 오늘 더 시간을 쪼개 일할 수밖에 없고 여행보다는 야근을 하며 더 많은 돈을 버는데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살피는 시간도, 남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도 사라지고 현재의 나 역시 사라지는 것이지요.
종교 역시 오지도 않은 사후세계를 위해 지금을 헌신하라고 합니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사후세계를 위해 지금을 헌신하는 것은 개인에 따라 좋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온전히 자신이나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생각할 여지를 남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다가오지 않은 내일이 아닌 지금,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지금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을 이해하고 점점 훌륭한 스펙만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찾고 ‘나’를 찾아가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지금을 걱정하고, 너와 내가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지식과 지혜를 더해 인간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머리와 가슴을 적절히 조화시켜 인간답게 살자는 학문이 인문학인 것이지요.
요즘은 사회적으로도 인문학을 강조하는 분위기 입니다. 그러나 정작 교육현장에서는 점점 인문학 비율을 낮아지고 인문과목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으니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라의 지성들을 길러내는 대학에서조차 점점 머리만 남아있는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으니 과연 그들이 사회에 나와 만들어갈 미래는 어떨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당신의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은 얼마나 먼가요. 오늘은 한번쯤 나의 내면을 깊이 있게 돌아보고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을 한번쯤 더듬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