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09. 2022

84. 국가란 무엇인가?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벌은 희망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참담한 현실 속에도 내일에 대한 작은 희망의 불씨만 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법이니까요. 한동안 우리 주변에서는 ‘헬 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떠돌았습니다. ‘헬 조선’이라는 말에는 지옥인줄 알면서도 그곳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뜻이 담겨 있겠지요.


‘최순실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부터 왠지 작은 희망마저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청소년에서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들까지 “이게 국가냐”라며 절망의 한숨을 내쉬고 20만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자국의 대통령에 대해 ‘하야’를 외쳐야 하는 처참한 현실, 국민들 스스로 선택한 대통령이 처음부터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었음을 목도하는 일은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참담함’입니다.


철인정치를 주장한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에서 국가의 수호자는 ‘정의가 무엇인지 아는 철학자’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의에 대해, 국가에 대해, 그리고 나라를 이끄는 수호자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고 정의하고 있는 이 책은 서양철학의 기축(基軸)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트라시마코스라는 한 소피스트는 정의를 주장하는 소크라테스에게 “정의는 강자에게 이익이요, 약자에게는 손해일 뿐이다. 확실하게 부정의를 행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를 행하는 것보다 더 강하고 자유로운 것이 아닌가. 부정의를 저지르려면 더 크게 저지르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는 모두가 트라시마코스처럼 ‘힘’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하던 때였으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아무리 정의를 부르짖은들 그 말은 ‘고상한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트라시마코스의 이 질문은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에게는 철학을 논할 수 있는 자질이 없고, 그런 대통령을 등에 업은 개인은 강자를 대행해 닥치는 대로 권력을 휘두르며 국민의 고혈을 재물삼아 사돈에 팔촌까지 호위호식 해 왔다는 믿기 힘든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 말입니다.


국가의 정의가 사라지고, 대통령의 정의가 사라지고, 정치의 정의가 사라진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초들이 집회나 시위를 통해 기를 쓰고 지키려 했던 것은 바로 ‘국가’와 ‘대통령’과 ‘정치’가 지켜내 주길 바라는 ‘정의’가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국가를 존립케 하는 헌법이 있고 그 헌법에 따라 삼권이 분립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논리로 궤변을 늘어놓는 소피스트처럼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빨갱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꿰어버리는 믿기 힘든 나라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때문에 어떤 이는 막장드라마를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게 될 줄 몰랐다는 말로 지금의 사태를 꼬집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반성문에는 반성이 없고, 국민을 대표하는 자들에게는 국민이 없고, 법을 대표하는 자들에게는 법이 사라진 지금…, 남녀노소 20만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일관되게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광장의 촛불 속에서 국가란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저녁입니다.

이전 18화 85. 민심은 천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