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09. 2022

86. 겨울, 나눔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우리 부모님들은 늦가을부터 준비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연탄과 김장입니다. 연탄은 리어카나 트럭으로 실어 와서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연탄 오는 날은 온 가족이 동원됐고 어린 우리들도 어김없이 줄을 서서 한 장이나 두 장씩 창고로 날라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연탄이 가득한 창고를 열어보며 뿌듯해 하시던 엄마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김장하는 날은 동네잔치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어린 꼬마들도 신이 나서 이리저리 다니며 한입 가득 김장을 얻어먹곤 했습니다. 100포기는 기본이었고 때로는 접반, 두 접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연탄을 쌓아두는 일과 김장하는 일, 없는 사람이 마음 편히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이 일들 때문에 가을의 초입이 되면 벌써부터 엄마 얼굴에는 왠지 모를 비장함까지 엿보이곤 했습니다.     


그 일을 다 마친 뒤에야 엄마는 자식들을 꽁꽁 언 방에서 재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비록 맛있는 것을 많이 사다 먹일 수는 없어도 최소한 밥에 김치 한 가지는 먹일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마음 편히 웃었습니다.     

그때부터 시간은 몇 십 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연탄을 때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열 포기나 스무 포기 정도 김치를 담는 것을 김장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아예 하지 않는 집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풍족해 보이는 21세기에 아직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연탄과 김치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끼니때가 되면 먹을 것을 걱정하고 연탄 살 돈조차 없어 겨우내 추운 곳에서 지낼 것을 걱정하는 이웃들, 그 이웃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는 많이 있는데 말입니다.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분들은 오히려 사각지대로 밀려나 예전보다 더 어려운 현실을 감내하고 계신 건 아닌지 찬바람이 불자 마음 한쪽에 걱정이 앞섭니다.     

그런데 찬바람이 불자 대학생들이 봉사현장을 찾아와 김장을 돕기 시작하고, 중·고등학생들까지 돈을 모아 마련한 연탄을 직접 배달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참 다행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눈길을 보낼 수 있는 청소년들이 있는 한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생각에 어느새 마음이 훈훈해 집니다.     

지난주에는 YMCA 건물 주차장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김장 나눔 행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김장을 하기 시작했고 버무린 김치들을 박스에 담아 당일 평택·오산·화성·안성 등지에서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금방 담근 김치를 건네며 주고받는 안부인사에는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비록 나라가 어수선해도 우리는 오늘의 일상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주변 이웃을 살피는 일, 이 추운 겨울을 함께 잘 이겨내기 위한 월동준비와 우리의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전 16화 89. 상식이 통하는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