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09. 2022

85. 민심은 천심

임금이 누구인지 백성이 신경 쓰지 않는 시기가 바로 ‘태평성대’라고 합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에는 별로 맞지 않는 듯 보이지만 이 말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듯 보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에,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에, 공무원은 공무에, 학생은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는 세상,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희망을 꿈꾸며 살 수 있는 세상이란 분명 정치적으로 평화로운 시기일 테니까요.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닙니다. 주부가 반찬값 아껴 저축하면서 언젠가는 내 집 마련을 기대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것, 학생들이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취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열심히 일하는 상인이 언젠가는 나도 번듯한 내 가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희망입니다. 각자 주어진 현실에서 조금 더 나은 곳을 바라보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이 희망이고 그런 국민의 희망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국가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민들은 생업도 포기한 채 나라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주부들은 유모차를 끌고 집회현장에 나오고, 학생들은 대학 수능시험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촛불을 듭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애쓰던 시장 상인들도 돈 버는 것보다 나라를 다시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거리로 나옵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대통령 이름은 물론이고 최순실·정유라·차은택 이름까지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입니다.


집회에 참가한 한 중학생은 “고작 14년을 살고서 국가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어린 청소년도 불법은 잘못이란 걸 알고 있는데 왜 우리보다 수십 년이나 더 살았던 그분들은 그것이 불법인지도 모르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또 한 여고생은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깔창을 생리대 대용으로 쓰고 있는데 이런 걸 지원하는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절차도 까다롭고 예산도 세우지 않으면서 비리에 사용되는 돈은 절차도 무시하고 거액을 마구 지불했던 것이냐”며 울분을 터뜨립니다.


지금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권력 있는 부모를 가진 또래를 따라갈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이 청소년들은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을 겁니다. 집회현장에서 ‘이게 나라냐’며 울분을 토해낸  여고생이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한다며 서둘러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자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다행히도 11월 12일 국민은 일어났습니다. 100만 명이 한 자리에 모여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을 외칩니다. 아기를 품에 안고 나온 부모는 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며 아이에게는 더 이상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또 한 부모는 정당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는 지금처럼 끌어내려질 거라는 걸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나왔다고 말합니다. 민심은 천심, 백성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요 우주의 기운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 바로 그것입니다.     

이전 17화 86. 겨울, 나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