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INFP가 각성하면 벌어지는 일-에필로그 |
2025년 2월 10일, XXXX서비스(주)대표이사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냈고, 하루만인 2월 11일에 해당 센터장이 전화했다. 회사 공식 라인의 답변이 아니라, 센터로 도돌임표. 그것도 화가 나는데, 센터장은 내용증명을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전화한 것 같았다. 법조문을 들면서 조목조목 따지니 확인 후 다시 전화 준다고 했다.
내용 증명을 쓰며, 진심을 다한 내 자신에 화가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강원도 양양으로 가는 시외버스 첫차를 탔다. 화가 나면 바다로 간다. 바다는 다 받아주니까.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의 경계를 응시하며, 밀려오는 파도와 멀어져 가는 파도를 감상하며, 커피 한잔을 마시고 서울로 오려는데 센터장이 다시 전화했다. 역시 빈약한 논리.
"대표이사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냈고, 센터장님이 위임받아서 변호사를 통해 확인하신 사항이라고 하시니,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XXXX서비스(주)의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될까요?"
"네."
"그러면 말씀하신 공식입장을 제 SNS에 올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논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언쟁을 벌였다.
동일증상 3번
내부 기준에 따른 동일하자 3번
판매 당시, 제품보증서에 따른 동일하자 3번
2024년 당시, 제품보증서에 따른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에 근거한다면서도 동일하자 3번?
"이것저것 다 떠나서 기업(동일하자 3번) VS 소비자(동일하자 2번+하자)로 해석 차이가 있을 경우, 소비자에게 유리한 해석을 따라야 합니다!"
센터장과 나 사이의 긴 언쟁은 팽팽한 실타래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현타가 왔다. 센터장은 호소하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이 민원은 단순한 고객 클레임이 아니었다. 만약 내 요구를 받아들이면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내가 소설가를 목표로 신춘문예를 두들일 때, 한 글쓰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등단은 40살 넘으면 힘들어."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40대가 되면 그려려니, 그럴 수도 있지 하게 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하니. 나도 그렇다. 20대의 나는 그걸 타협이라 불렀다.
쌈닭에서 회피형으로
글을 쓰면서 개과천선해서 잊고 있었지만, 원래 나는 쌈닭이었다. 淨善. 내 이름이다. '깨끗할 정에 착할 선'. 깨끗할 淨자는 정수기 할 때, 그 정자이다. 깨끗함(淨)을 얻기 위해서는 부딪힘이 필요하다. 마치 흐르는 물이 돌과 부딪히며 맑아지듯이. 그래서 淨자는 다툴 쟁(爭)에 물 수(水) 변이다. 이름에는 보통 쓰지 않는 한자이다. 조상님이 왜 그러신 건지. 그래서 인생에 싸움이 많았다. 그 싸움은 善(착할 선)에 이르기 위한 정의라고 주장하며, 세상과 끊임없이 부딪혔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그래서 너를 응징한다.
그러나 내가 한 말과 행동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갈등을 피하며 살았다. 내가 한 말이 칼이 되어 상대의 마음에 비수로 꽂히는 일 없기를 바라며, 갈등을 아예 피했다.
그랬더니, 슬슬 건드리는 사람이 생겨났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시비를 걸었다. 그래도 나는 허허 웃었다. 그랬더니 무시까지 하는데. 그래도 참으며 언젠가 내 진심을 알아주겠지, 하며 참기도 많이 참았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은 왜 나를 건드릴까?" 진짜로 궁금해서 예전 입사 동기에게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너는 건드려 보고 싶게 만들어."
"엥?"
그게 무얼 뜻하는지 작년에 퇴사하며 겨우 깨달았다. 조직에 들어가면 재빨리 위, 아래를 파악해서 자신의 포지션을 정해야 하는데, 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으니, 내가 자기보다 위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찔러보는 거였다. 그런데 건드려도 반응이 없으니, 어? 어? 어! 하다가 나중에는 별거 아니네, 하고 무시하는... 무시해도 바보같이 허허 웃으니... 내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때, 글쓰기는 구원이었다.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다. 2024년 32편의 자서전을 쓰고, 내가 회피형으로 살았다는 걸 깨쳤다. 더는 회피형으로 살지 않겠다고 각오한 게 2024년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2025년 1월 10일 시험대에 바로 올랐다.
'너 어디 각오한 데로 갈등에 직면하나 보자'하는 것 같은 시험 말이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근거한 환불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요구"를 위한 지난한 싸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소비자 기본법, 소비자 기본법 시행령, 민법(하자담보책임), 전자상거래법,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나는 논리와 법리로 소비자 권리를 주장했다. 1차 환불 요구서, 2차 센터장 앞으로 내용 증명, 3차 공식홈페이지 1:1 문의, 4차 대표이사 앞으로 내용증명, 5차 센터장과 각축전
애초에 질 싸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내 요구를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그동안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고 이는 곧 기업 이미지 실추와 잠재적 대규모 손해배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
그렇더라도 내가 싸운 이유는 단순히 금전적 보상을 넘어, 이런 시스템적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관행이 변화되기를 원했다. 당장의 개별적 환불이나 개인적 사과보다는 앞으로 누군가가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집요하게, 그러나 폭력적이지 않게 끝까지 파고들었다. 나의 싸움은 결국 개인의 작은 저항이었다. 시스템의 모순을 드러내고, 소비자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관철시키려는 시도.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작고도 힘 있는 저항의 방식 말이다.
2024년 동일모델의 품질보증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근거한다는 공식 입장을 확인한 후, XXXX서비스(주)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위반일 수 있다는 논리에 까지 이르니,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소송으로 끝까지 가면, 시스템은 건재한데 관계된 직원 분들만 다칠 수도 있으니까. 더 솔직한 이유는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정도로 그들을 애정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의구심이었다. 그런 후 나는 타협했다. 그리고 40대의 나는 그걸 포용이라고 부른다.
올해 2025년, 내게 망신살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손해 봄으로서 액땜했다 한다.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분께 들은 얘기다. 나는 끈질기게 파고드는 집요함이 있다. 게다가 고지식하다. 이러 내가 오기를 부리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 지는 것이다. 이건 나를 파괴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르포를 쓸 때, 살어음을 걷듯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이 경험의 온전한 의미는 아직 모르겠다. 단지 이 시점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약간의 허무감도 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야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확실한 건, 더 이상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너 어디 각오한 데로 갈등에 직면하나 보자'하는 시험은 통과한 걸까?
이 르포는 단순한 소비자 분쟁의 기록을 넘어, 한 개인이 시스템과 마주 서는 방식에 대한 성찰이 될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계속 흐르는 물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 진정한 성장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허무함마저도 의미 있는 여정의 한 부분일 것이다.
좌충우돌하는 저의 르포를 관심 갖고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유익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