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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사님의 문자 입력 등반기

치매 예방엔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쵝오에요!

by 산들바람

엄마는 1952년 생 용띠다. 생일은 부처님오신날이다. 부처님오신날, 용띠로 태어난 여자가 살아 낸 남존여비의 세월이란... 그래서 엄마는 자신의 생일을 싫어하신다. 자신의 성격도 남자 같다고... 그런데 아빠를 잘 만나서 결혼하셨다 말씀하시곤 한다. 그런 엄마에게 74세 생신을 맞아 스마트폰을 선물로 드렸다. 핸드백 스타일의 스마트폰 케이스까지 포함해서.


생신 선물 중에 스마트폰을 사드린 이유는 요즘 엄마의 관심사가 치매이기 때문이다.


"치매에 좋은 약이 뭐야?"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잘하는 거. 그중에 운동이 최고야!"


그래서 엄마 좋아하는 꽃사진을 찍으며 산책하시라고 최신 스마트폰을 사드린 것이다. 기기변경을 하고 제일 먼저 중랑천변을 산책하며 카메라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내친김에 문자 입력하는 것까지 가르쳐 드렸다. 새로운 걸 배우면 머리 회전에 도움이 되니 그거야 말로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엄마에게 있어 스마트폰 문자 입력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첫 번째, 키보드 형식 중 천지인은 구조를 설명하기가 어려워 Qwerty로 선택했다.

두 번째, ㅃㅉㄸㄲㅆ와 ㅒㅖ를 입력하기 위해선 (↑)를, 기호를 입력하기 위해서 (!#1) 먼저 입력해서 키보드 배열을 바꾸는 것

세 번째, 복합 모음과 복합 종성 입력하는 방법 등등


그래서 내가 좀 더 편하게 가르쳐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챗봇을 만들었다.

바로 어르신의 가족이나 돌봄 선생님을 위한 문자 입력 방법의 정보를 제공하고 교안을 생성해 주는 맞춤형 GPTs 말이다.






엄마에게 문자 입력 방법을 가르쳐 드리며, 엄마의 단기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알려드린 걸 왜 모르지? 엄마는 나 보기 민망한 것인지, 뜻대로 잘 안되니 짜증 난 것인지 안 한다며 핸드폰을 자꾸 밀치셨다. 나도 답답했는데, 시도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행동에 퍼즐이 맞춰졌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옆에서 잘한다며 읏짜읏짜 해드리고 내 이름 3글자를 보내면 100,000원을 축하금으로 드린다며 동기부여도 해드렸다. 그리고 드디어 성공!




미션 성공한 엄마에게 축하금 100,000원을 드리니 아주 신나 하시며 오빠한테도 문자를 보내셨다. '호선아엄마다' 그러나 오빠에게 답문이나 전화가 없었다. 성격 급한 엄마는 오빠에게 전화해서 문자 보냈는데 왜 답이 없냐고 서운해하셨다, 오빠는 스미싱(?)인 줄 알았다며 원래 하시던 대로 하시라 했다. 아! 엄마를 닮은 아들이란... 엄마는 잠시 실망하셨지만, 막내아들에겐 '문자 보내는 걸 배웠다는 내용'까지 포함해서 문자를 보내셨다. 동생은 엄마에게 문자 받는 날이 오다니, 감격이라는 답장을 보냈다. 치매 예방에서 시작된 스마트폰으로 꽃 사진 찍기는 문자 입력 배우기까지에 이르렀고 엄마의 "김정선밥잘먹었니"라는 한 줄의 문자는 코끗이 찡, 나의 자랑이 되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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