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괜찮아. 나와도 된다."
나는 밖이 보이지 않는 상자 안에 갇혀서 웅크리고 있었어.
상자 밖에는 무서운 사람이 너무 많았거든. 매일 밤 캄캄한 상자 안에서 모로 누워 생각했어. 사고를 가장해서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그 방법을 거의 찾았을 때쯤 말야. 이 고통도 이제 끝이구나, 안도할 때쯤 말야. 이상하게 살고 싶어지는 거야. 언제든 죽을 수 있는데 지금 꼭 죽어야 하나, 하는 그런 미련 같은 살고 싶음.
그렇다고 상자를 벗어던지진 못했어. 내가 있었던 바깥세상은 말야, 너무나 비정한 곳이라서 나는 늘 상처받았고 아파야 했어.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는 나날들. 약에 취해 겨우 잠이 들어도 얕은 잠을 자기 일 수였고 악몽에 놀라 잠에서 깨면 새벽녘이 얼마나 추웠나 몰라. 전생에 지은 죄를 빌 듯이 시린 손끝을 비비며 울기도 많이 울었어. 그래서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던 거야.
그런 어느 날, 상자 밖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상자를 두드리는 것 같은 그런 소리 말야. 그거 알아? 눈에 보이는 게 없으면 귀가 더 잘 들려.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에 어둠을 집으며 기어가는데 말이야, 상자 안으로 들어와 여태껏 닿아본 적이 없는 벽에 닿아 가만히 귀를 대고 정신을 모았어. 파랑새였어. 그건 파랑새가 날갯짓하며 우는 소리였어. 또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였어. 그와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이 웅웅 상자 안을 진동시켰어.
심장이 뛰는데 말야. 나가고 싶다.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말야. 나가기는 무섭고. 그러니까 더욱 나가고 싶은데 말야. 심장이 무척 아팠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혼란스러워서 나도 모르겠다 등지려는데 말야. 언 강에 실금이 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상자 안으로 슬며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거야. 비집고 들어온 빛이 새어 들어오다 새어 들어오다 상자에 점점 구멍을 내더니. 뚫린 구멍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야. 빛과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말이야. 오랜만에 본 햇빛에 눈이 타는 것 같았어.
너무 무서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야.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공간에서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찰나, 숭숭 뚫린 상자 밖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괜찮다. 괜찮아. 나와도 된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어. 목이 메는 걸 입술을 깨물며 참는데 말야. 결국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는 거야. 한 번 터지는 게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이야. 투둑 눈물이 손등을 적시는데. 눈물을 훔치려고 손드는 자리에 노란 문고리가 보이는 거야. 문고리를 열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괜찮다. 괜찮아. 나와도 된다.”
나를 타이르듯 부르는 낮은 목소리가 또 들리는데. 그 부드럽고 자상한 음성에 용기 내어 손잡이를 돌렸어. 숨을 몰아쉬고 온몸으로 문을 미는데 말야. 환희라는 단어가 살아 움직인다면 그 모습을 하고 있을 거야. 사방이 온통 빛으로 가득 차 있는데 말이야. 내 머리 위로 파랑새가 날아다니며 지저귀는데 말야. 눈송이가 파랑새의 노랫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내 몸을 감싸는데 말야. 크리스마스트리의 오색전구가 크리스마스캐럴의 리듬과 함께 반짝이는 데 말야.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 것 같은 장관인 거야.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온 걸 온 누리가 축하해 주는 것 같은 그런 잔치 말이야.
그 가운데 네가 서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