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그트ㅡ캄프 테스트의 목적은 공감 능력이라는 판단 근거를 통해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긋기 위한 것이다. 이는 “진짜 인간과 겉으로만 인간인 것처럼 보이는 가짜 인간을 차별” (Shet ley 70)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인간만이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다른 생명체에 공감 능력을 보이지 않는 기계를 대면했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기계만이 가지고 있는 냉정함이다. 이지도어가 안드로이드인 프리스를 마주했을 때 “냉정함”(67)을 느끼는 것도, 데커드가 기계들의 속성을 대변하는 이러한 “냉정함”이 없었다면 “이들을 쫓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안드로이드는 “다른 안드로이드에게 어떤 일이 생기든 상관하지 않”(101)는 “반사회적이며, 병적인 존재” (Huntington 154)로, 인간에게는 내재되어있는 본능인 공감 능력이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ㅡ공감 능력의 정도 또는 흔히 개인마다 다르다고 여겨지지만, 딕의 소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공감 능력이 인간에게만 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임을 드러내면서 공감 능력의 범위를 기계에까지 확장시킨 것에 있다. 즉 딕의 소설은 공감 능력의 정도의 차이보다는 공감 능력의 내재 여부로 인간과 기계를 판별하는 것에 보다 중점을 두면서 인간과 기계의 차별적 지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에 주력한다ㅡ된다.
ㅡ 참조 :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영문학 전공 이서연 논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와
<블레이드 러너>에 그려진 인간과 기술의 관계 中에서
이번에 (릭은) ‘보이트 캠프 윤곽 척도’에서 여덟 번째 질문으로 바꿔말했다. “당신은 어린 아들을 두고 있는데, 그 아이가 갖고 있던 나비 표본을 당신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심지어 살충통까지도요.”
“저라면 아들을 의사에게 데려갈 거예요.”
레이첼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단호했다. 다시 한번 두 개의 측정기가 반응을 기록했지만, 이번에는 앞서처럼 멀리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는 이 사실도 기록해두었다.
나 : 엄마, 질문이 또 있어. 내가 살충통을 가지고 다니면서 곤충 표본을 만들어 논다면 엄마는 어떻겠어?
엄마 : 학교에 낸다고 학생들 많이 했잖아. 숙제로.
나 : 그지. 근데 나는 바퀴벌레 죽이는 것도 찜찜하더라고. 중학교 생물 시간에 새끼 붕어 해부하곤 한동안 생선도 못 먹었구.
엄마 : 공부하려면 어쩔 수 없지.
나 : 어려서부터 동물 죽이면서 흥미를 느끼다가 어른이 되면 살인도 저지르는 게 사이코패스라고 하던데?
엄마 : 사이코는 몰라도 요즘 뉴스 보면 사이코 많아. 다 또라이야.
공감 능력이 없는 아이라는 판단이 들 때, 병원행을 결정하는 엄마는 인간일까? 로봇 일까?
숙제니까 곤충 표본을 만드는 게 이상할 게 없다고 한 우리 엄마는 레이첼과 무엇이 다른걸까?
왜 레이첼은 곤충표본과 살충통을 보여준 어린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갈거라고 한걸까?
아이가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 경향을 보여서?
그렇다 치면, 사이코패스로 진단한 병원은 사이코패스 경향을 치료(?)할 수 있을까?
레이첼이 인간이 맞다면, 인간 엄마들은 어린 자식들의 병원행을 단호하게 결정내릴 수 있을까?
곤충이 소리 없이 죽어 나가는 것보다, 자식의 처지에 공감하여 두둔하고 나서는 게 인간 엄마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