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선물

by 섬아이

딱지에 그려진 노란색 별이 침침하게 보이기 시작할 때쯤

밤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호야는 얼른 교회로 달려가 큰 괘종시계를 쳐다봤다.

벌써 7시 15분이었다.


“야, 가자!”


호야의 단호한 얼굴에 놀라

짜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엄마한테 디졌다.”


호야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짜야도 덜컥 겁이 났다.


불과 며칠 전 호야는 엄마에게 종아리를 맞았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밤 9시가 넘어 집에 왔기 때문이다.

그 사이 엄마는 제당 마당이며 교회 공터, 학교 앞 또랑까지 호야를

찾으러 다니다, 바다에서 작업 중이던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앞바다로 호야가 떨어진 건 아닌지 찾아보라며 꺽꺽 울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잔뜩 겁먹은 얼굴로 집에 들어온 호야를

엄마는 반가워하기는 커녕

파리채를 들고 사정없이 때렸다.

호야는 두 손으로 종아리를 막느라

짜야는 엄마를 말리느라

눈물범벅이 됐다.


아빠의 왕꿀밤 한 대로 겨우 마무리 되었지만

7시까지 들어오라는 엄마의 엄포는

호야의 마음에 핏자국처럼 진하게 새겨졌다.

“야, 오늘은 니가 교회에서 똥싸다가 늦었다고 해. 알았제?”

짜야는 잔뜩 겁먹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또랑가를 날아가듯이 뛰었다.

숨을 헉헉 거리며 도착한 집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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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에는

작은 쪽지와

계란 후라이 두 개, 다 식어버린 매운탕 국물이 놓여 있었다.

호야는 쪽지를 펼쳤다.


“아빠랑 거북손 캐 오께. 밥 먹고 문 꼭 잠가라. 호야 부탁한다.”

호야는 그제야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놀다 오는 건데...


짜야는 밥에 계란을 비비다 말고 투덜거렸다.

“나도 거북손 캐고 싶은데. 엄마만 가고. 흥치.”

“야! 작살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나? 아빠가 작살로 거북손 캐면 엄마가 뜰채로 받치고 있어야 한다.”


“그라믄 내가 뜰채 잡고 있으면 되지.”


“그게 작살보다 더 무겁다. 알지도 못하는 게.”

짜야는 호야의 말에 약이 올랐는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짜야는 이불에 누워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도 내내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반면 호야는 홀가분한 얼굴로 낄낄거리며 웃었다.

“형아는 걱정도 안되나? 엄마 다치면 우야노?”

호야는 발로 짜야의 엉덩이를 툭 찼다.


“엄마가 왜 다치노. 내 종아리 보면 모르나? 엄마 힘이 얼마나 센데.”


짜야는 훌쩍이며 엄마 베개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니 엄마 보고 싶어서 그라제? 애기네, 애기.”


“아이다! 형아 니가 더 애기다. 애기처럼 억수로 운 거 학교 가서 소문 다 내뿔끼다.”


“내라, 내라, 이 바보야.”


호야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짜야가 진짜로 소문을 낼까 봐 내심 두려웠다.

호야는 두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누웠다.

베개에서는 희미한 비누 냄새와 담배 냄새가 났다.

자신이 마치 아빠가 된 기분이 들었다.

호야는 차근히 말을 이었다.


“니 오징어 배 불이 얼마나 밝은 줄 아나? 오징어가 불빛보고 따라온다.

그니까 하나도 안 무섭다. 엄마 안 다친다.”


짜야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새 짜야는 침까지 흘리며 잠이 들어 버렸다.


사건이 있기 전,

호야는 거북손이 먹고 싶다며 며칠째 엄마를 졸랐다.

딱딱한 거북손톱 위에 있는 꺼칠한 껍질을 벗기면

야들야들한 분홍색 속살이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달큰하고 고소할 수가 없었다.

호야는 그런 짭짤한 바다 맛이 좋았다.

큰 파도와 작은 파도, 넓은 하늘까지도 한입에 쏙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바위 섬 어딘가에 붙어있을 거북손을 캐는 건

아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호야는 괜히 마음이 심란해져 잠이 들지 못했다.

‘괜히 먹고 싶다 했나...’


똘이도 한숨인지, 잠꼬댄지 모를 긴 숨을 쉬었다.

형광등 안에 죽은 날파리들이 잔뜩 꼬여 있었다.

호야는 한참 날파리를 세다가, 티비를 다시 켰다가

옆으로 돌아눕다가 어느새 설핏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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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 호야.”


호야는 꿈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호야, 일나봐라.”


바다 냄새가 났다.

분명 엄마 목소리였다.

호야가 부스스 눈을 뜨자 엄마가 활짝 웃는 얼굴로 호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날개가 파닥거리는 잠자리 한 마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우와~”


“아빠 배에서 잡았다. 니 줄라꼬 갖고 왔다.”


호야는 잠자리를 받아들고 신기한 듯 쳐다봤다.

“내일 거북손 삶아 주께. 억수로 마이 캐왔데이. 니 다 묵어라.”

엄마는 호야보다 더 기쁜 얼굴로

호야의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호야의 종아리에 미끌한 바세린이 발라져 있었다.

호야는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해서

파닥거리는 잠자리 날개만 계속 쳐다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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