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들과의 문어 만찬

by 섬아이

차례 상에 올려진 참문어를 보고

호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초고추장에 콕 찍어 먹는

야들야들한 문어 다리 맛은

통닭 다리만큼이나 맛있기 때문이다.

참문어는 돌문어보다 부드러워서

비싸게 팔리기 때문에

집에서는 항상 돌문어만 먹었다.


그러나 명절에는 언제 잡았는지 모를

큰 참문어가 항상 차례 상에 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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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며칠 전 민기가 잘못 던진 돌에 맞아

엄지발가락에 금이 가 퉁퉁 부었었다.

그때는 아파 죽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괜찮았다.


그러나 호야는 성묘에 가기 싫어

아침 먹고 이불에 벌렁 드러누웠다.


“장남이 성묘 안가면 우야노.

증조할매가 호야 보고 싶다 하시겠네.”

호야는 자는 척 옆으로 돌아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호야 눈썹을 보며

짜야와 아빠는 킥킥 웃었다.


친척들이 성묘에 간 후

할배 친구들이 찾아왔다.

뻥튀기 할배랑 바둑쟁이 할배다.

할배들 앞에 금방 술상이 차려졌다.

술상에는 가지런히 썰린 문어가

큰 접시에 담겨 있었다.

호야는 이불에서 빠져나와 대충 인사를 하고

리모컨을 찾는 척

할배 옆에 가 슬그머니 앉았다.

뻥튀기 할배가 물었다.

“니는 뭔데 할배 옆에 딱 붙어 앉아 있노?”


“내요? 내는 장남인데요.”


“장남? 그럼 니 이름이 김장남이가?”


“아니요. 내 이름은 호야요, 김호야.”

할배들은 소리도 내지 않고 –파 하고 웃었다.

호야는 할배들이 왜 웃는지도 모른 채

상위에 있는 문어를 보고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자 할배가 문어 한 점을 집어 호야 입에 넣어 주었다.

호야는 그것을 아껴서 꼭꼭 씹었다.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서 간질간질 녹았다.

그러다 어느새 홀라당 삼켜버렸다.


“아...”


“와?”


바둑쟁이 할배가 물었다.


“문어가 목구멍으로 쑥 넘어 갔어요.”

호야는 금방이라도 울 것 처럼 말했다.

“니 할배가 미끄러운 거 줘서 그렇다. 빨판 많은 거 먹어야

햇바닥에 딱 붙어가 안 떨어진다. 아 해봐라.”


호야는 입을 벌려 바둑쟁이 할배가 주는 문어를 받아먹었다.

오돌토돌한 빨판이 입안이 꽉 차서 씹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참을 씹었다.

그러다 또 꿀꺽 삼켜버렸다.


“아, 문어가 왜 이리 미끄럽노. 자꾸 도망가네.”

호야는 할배 눈치를 힐끗 보며 투덜거렸다.


그때 할매가 막걸리 한 주전자를 더 갖고 왔다.

그러더니 유리컵에 막걸리를 부어 호야에게 내밀었다.

“문어가 니 키 작다고 우습게 보고 안 그라나.

이거 한잔 묵어라. 그래야 키큰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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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는 목을 움츠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작년 추석에도 할매가 주는 시큼털털한 막걸리를 마셨지만

키는커녕 이불에 오줌을 싸서 짜야한테

한참 놀림을 당했다.


“할배들이 와 문어를 꼭꼭 오래 씹고 있는 줄 아나?

문어는 술 먹는 사람을 무서버 한다.

니 이거 마시면, 키도 크고 문어도 도망 안 간다.”

호야는 그제야 할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씩 웃었다.

호야는 상 앞으로 더 바싹 붙어 앉았다.

그런 다음 막걸리를 콧물만큼 입안에 흘려 넣고는

큰 문어 한 점을 입에 쏙 집어 넣었다.


그러자 문어가 더 오래 씹히는 기분이 들었다.

할매 말이 진짜로 맞았다!


호야는 서서히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막걸리도 다 비우고 접시에 있는 문어도 몇 점 남지 않았다.

할배들의 두런두런 하는 말소리가

호야 귀에는 웅웅 왕왕 하는 소리로 들렸다.

마치 물속에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뻥튀기 할배는 이쑤시개 두 개로 이빨을 쑤시고

바둑쟁이 할배는 한 손에 컵 두 개를 들고 술을 마신다.

‘할배들 욕심쟁이네. 히히’


할배들은 간간히 숨을 참다가 ‘파’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호야나 짜야처럼 소리 내서 웃는 것도 아닌데

웃고 있었다.


호야도 할배들 따라

잠수하듯이 숨을 ‘합’ 하고 참다가 ‘파’ 하고 터뜨렸다.

실실거리며 웃고 있는 호야를 보며

할배들은 또 ‘파’하고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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